올 들어 꾸준히 삼성전자(005930)를 팔아치웠던 외국인 투자자가 최근 5거래일간 1조원 가까이 사들이는 등 그간의 행보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글로벌 증권사가 미국 마이크론에 대한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하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경고등이 켜졌지만 이를 계기로 오히려 저평가돼왔던 삼성전자에 재차 관심이 쏠리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견조한 업황·실적 전망에 기대를 걸고 있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3조5,000억원 규모로 삼성전자 주식을 순매도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5월 들어 8,551억원어치를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5거래일 동안에만 9,927억원을 순매수하는 등 지난달 말부터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끌어모으고 있다.
5월31일(현지시간) 글로벌 증권사인 모건스탠리가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발표했음에도 삼성전자 매수세는 이어졌다. 모건스탠리는 최신 보고서를 통해 마이크론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시장 비중’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고 그 영향으로 뉴욕 증시에서 마이크론 주가는 하루 만에 전일보다 8% 가까이 급락했다.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는 업황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마이크론의 비싼 주가를 지적했다. 조지프 무어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최근 2년간 반도체 업종이 호황을 나타냈지만 이제는 중립적인 입장으로 옮겨갈 때”라며 “D램 시장은 여전히 전망이 좋지만 마이크론은 이미 목표주가에 근접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올 들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2% 오르는 동안 마이크론의 주가는 52%나 급등했다.
이 같은 분석은 오히려 삼성전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마이크론과 달리 올 들어 삼성전자의 주가는 0.7% 상승에 그쳤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1.15%)보다는 선방했지만 반도체 시장 점유율 2위인 SK하이닉스(000660)(19.5%)에 훨씬 못 미친다. 모건스탠리의 보고서가 발표된 후인 이날 전일 대비 1.18% 오른 5만1,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모건스탠리의 지적에도 외국인 투자자는 이날 삼성전자 주식 1,169억원어치를 순매수하는 등 여전히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김선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마이크론·SK하이닉스가 올 들어 시장 수익률을 훌쩍 웃돌았지만 삼성전자는 지배구조 개선에 따른 대량 매물 출회 가능성 등으로 인해 저평가돼왔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액면분할과 계열사 보유 지분 매각 등의 변수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황이다. 박원재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삼성생명·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으로 단기 수급 우려가 줄었고 액면분할로 개인 주주 비중이 늘면서 지배구조가 무리하게 변화할 가능성도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수급에 균형이 잡히면서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덕분에 시장에서는 업황과 실적에 좀 더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3·4분기까지 사상 최대치 경신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서버용 반도체 등 수요가 늘면서 반도체 업종의 호황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론의 높은 주가에 경계심이 커지며 이날 2.14% 하락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SK하이닉스 주식을 543억원 팔아치웠다.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식을지는 미지수다. 증권사들이 추정한 올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전년 대비 46%로 삼성전자(23%)보다 높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