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로또 아파트의 추억

이혜진 건설부동산부 차장


46만7,000명. 최고 2,071대1. 평균 50대1.

지난 2006년 5월 판교신도시 아파트 청약에 몰린 청약자 숫자와 청약 경쟁률이다.

노무현 정부가 취임한 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서울 강남 대체 입지에 대규모로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해 판교신도시를 조성하고 아파트를 파격적으로 싸게 공급하면서 로또 아파트 광풍이 불었다. 당첨은 꿈 같은 일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당시 전용 84㎡ 아파트의 분양가는 약 4억원이었다. 현재는 실거래가 10억여원, 호가는 그 이상이다. 10여년 만에 원금을 제외하고 150% 이상 올랐다. 1주택자라면 9억원 초과분에 대한 양도세만 내면 된다. 10년간 월급을 모아 5억원을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국민 로또라고 할 만하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도 또 다른 로또 아파트였다. 2008년 MB 정부는 수도권에 15~50% 싼 주택을 2018년까지 150만가구 짓겠다고 발표했다. 시범지구로 2009년 서울 강남·서초 일대에서 진짜 반값 수준으로 분양됐다. 강남구 세곡동 전용 84㎡의 분양가는 3억4,000만원이었다. 지금은 11억원에 육박한다.

로또 아파트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보금자리나 판교만큼의 대박은 아니지만 정책에 따른 로또 아파트는 꾸준히 양산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로 인근 시세보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싸게 아파트를 공급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도권에서 중소형 아파트를 2억~3억원에 공급하는 신혼희망타운이 로또 아파트로 대기하고 있다.

실제로 로또는 극소수에게만 행운이 돌아갈 뿐 대다수는 씁쓸한 낙첨 현실에 머무는 것처럼 로또 아파트 역시 무주택자들에게는 ‘희망 고문’이다.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판교 공공분양 아파트 물량은 5,800여가구에 불과했다. 강남권 보금자리 역시 4,000여가구에 그쳤다. 최근 인기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이 수십대1을 넘는 일은 여사다.

서울에서 40여년간 무주택자로 살아온 지인이 최근 아파트를 사겠다고 결심했다.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를 위한 디딤돌대출을 받아 아파트라도 장만해놓지 않으면 언제 서울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했다. 월급 받아 알뜰살뜰 모은 전세금을 종잣돈 삼아 작고 낡은 아파트라도 사놓아야 크게 오를 일은 없어도 전세금이 부족해 직장에서 먼 곳으로 이사 가야 할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오래전 만든 청약통장이 있기는 하지만 대입 경쟁률, 취업 경쟁률보다 더 높은 인기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을 보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운으로는 2대1도 못 뚫어본 인생에서 로또 아파트 당첨이 과연 가당키나 한 기대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무주택자들에게는 소수만 돈벼락을 맞는 ‘미끼 상품’ 같은 로또 아파트 정책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면 안정적인 주거지를 마련할 수 있는, 골고루 혜택을 보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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