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핏줄 안에서도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정치, 문화 등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킵니다. 이로 인해 전쟁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때론 그 무대가 그라운드가 되곤 합니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때론 진짜 총성이 울리기도 합니다만…) 전쟁 못잖은 그들의 승부를 흔히 ‘더비’라고 부릅니다.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란 말처럼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AP연합뉴스
라치오 vs 로마 (이탈리아)
이탈리아 수도 로마를 연고로 하며 같은 경기장을 사용하는 로마와 라치오의 경기는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1979년 이탈리아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최초의 사망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경기가 바로 이 둘의 더비 경기였습니다. 로마 팬들이 던진 홍염에 맞은 라치오 팬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한 것이지요. 게다가 2004년엔 응원 온 소년이 경찰차에 치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합니다. 이에 ‘로마의 황제’라 불리는 프란체스코 토티가 경기 연기를 요청했고, 서로의 책임이라 몰아붙이며 양쪽 팬들은 150명이 부상을 입고 13명이 체포되는 최악의 난투극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철천지원수도 하나가 된 적이 있습니다. 2013년 코파이탈리아 결승전 식전 축하 무대로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불렀습니다. 서로 으르렁대던 양 팀의 서포터즈가 이때만큼은 하나가 되어 노래가 흐르는 내내 엄청난 야유를 보내는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누리꾼들은 이에 대해 ‘인종차별’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탈리아 축구 경기에, 그것도 처음으로 로마 더비로 치러지는 결승전에 이탈리아 가수도 아닌 한국 가수를 초대한 것을 두고 팬들이 불만을 터트렸다는 게 주된 현지 반응이었습니다. 싸이를 초청한 주최 측에 대한 불만이 공연 당일 싸이에게 집중된 것으로 보는 게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AP연합뉴스
셀틱 vs 레인저스 (스코틀랜드)
‘올드펌 더비’라 불리는 두 팀의 라이벌전은 레인저스가 1888년 셀틱의 홈구장이 있던 글래스고 남쪽으로 연고지를 옮기며 시작됩니다. 특히 셀틱 팬들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이고 레인저스 팬들은 스코틀랜드계 개신교인이 많아 종교 대립으로 치달으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축구 경기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두 팀의 경우 리그에서 월등히 뛰어난 실력을 보여 더비의 승부에 따라 우승 향방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양 팀은 팬들은 “너 죽고 나 살자”란 심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응원을 하게 됩니다. 1970년대 레인저스에서 뛰었던 고든 스미스는 “리그 최종전이 셀틱 원정이었다. 우리는 비기기만 해도 됐지만, 그 경기에서 패하는 바람에 셀틱에 우승을 빼앗겼다. 셀틱 파크 라커룸에 앉아서 그 환호성을 들었던 것이 내 인생 최악의 경험이었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라리가 홈페이지
바르셀로나 vs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엘클라시코. 축구 더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이름. 바르셀로나의 지휘봉을 잡았던 보비 롭슨 감독은 “카탈루냐는 한 국가이고, FC바르셀로나가 그 군대다”라고 할 정도로 두 팀은 앙금의 역사는 깊습니다. 1902년 창단한 ‘마드리드 풋볼 클럽(현 레알 마드리드)’은 1920년 왕실의 후원을 받아 ‘레알’이란 칭호를 획득합니다. 바르셀로나는 1899년 스위스, 영국, 카탈루냐 시민 팬들이 모여 만들어 집니다. 독재자 프랑코 장군은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앞세워 바로셀로나 고유의 언와 문화를 억압했고 반대로 레알 마드리드는 중앙정부의 선전도구로 이용되며 중흥기를 맞이합니다. 프랑코 독재 시대가 막을 내리며 카탈루냐 지역도 자유를 얻지만, 레알 마드리드와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은 절정에 이르며 지금까지도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올 시즌 바르셀로나는 28승9무1패라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라리가 25번째 우승을 차지합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3위에 그쳤지만 챔피언스리그 3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으로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메시와 호날두로 대표되는 두 팀. 호날두의 이적 암시 발언으로 뒤숭숭한 상태지만 두 팀의 더비 경기는 매년 최고의 빅카드로 60억 지구촌을 잠 못들게 만듭니다.
/황원종기자 wonjja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