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은 지난달 저소득층의 소득이 사상 최대폭 줄었다는 가계동향조사를 발표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 통계에서 실업자와 자영업자를 빼고 임금근로자만 추출한 다음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로자의 근로소득이 늘었다’고 홍보했다. 통계 왜곡으로 엉뚱한 결론을 끌어냈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렇다면 이번 가계소득통계가 주는 진짜 교훈은 뭘까. 전문가들은 세 가지의 정책 시사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①인위적 임금 인상은 부작용…생산성 향상 집중=가계동향조사의 원자료를 모집단 가공 없이 분석한 결과 올 1·4분기 소득 하위 20% 이하 저소득 가구(2인 이상)에서 무직자 가구(가구주가 비취업 상태)의 비중은 57.0%였다. 전년(49.1%)보다 7.9%포인트 급증했다. 이는 지난 5년간 평균 증가율인 2.6%포인트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의 실업 급증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의 여파로밖에 설명할 수 없고 결국 인위적인 임금 인상은 위험하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금을 포함한 경제요소의 ‘가격’은 최대한 시장에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경수 한국경제학회장은 “생산성 향상 없이 인위적으로 임금을 올리면 고용과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은 자명하다”며 “이제라도 정책 기조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도 “영세 자영업자들이 많고 반도체 외에 제대로 성장하는 산업이 없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니 저소득층부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규제개혁, 신산업 육성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②임금근로자 간 불평등보다는 실업 문제가 시급=가계소득통계는 분배정책 강화가 불가피하다면 우선순위를 임금근로자보다 실업자에 둬야 한다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올해 임금근로자의 근로소득 양극화는 개선세가 뚜렷했다. 소득 상위 80~90%와 90~100% 고소득층의 경우 올 1·4분기 근로소득이 4.8%, 5.1% 늘어난 데 그친 반면 하위 0~10%와 10~20%는 8.9%, 13.4%로 큰 폭 상승했다. 문제는 실업이다. 저소득층은 실업 급증이 임금근로자 근로소득 증가 효과를 압도해 전체 소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실업급여와 실업훈련 등 안전망 확충에 재원을 우선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의 실업급여제도는 최대 지급기간이 8개월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개월에 크게 못 미치는 등 취약하다. 정부는 현재 분배정책 일환으로 근로장려금(EITC) 확대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임금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것인 만큼 실업 지원 다음의 후순위로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③결국은 일자리…노인 고용의 질 대폭 높여야=저소득층의 소득 감소에는 비경상소득 감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비경상소득은 경조소득·퇴직수당 등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을 말하는데 이 소득이 1년 전보다 8만6,000원 줄면서 총소득 악화에 일조했다. 만약 저소득층의 근로소득 기반이 안정돼 있었다면 이처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은 덜했을 것이다. 결국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서라도 양질의 일자리 확대가 최우선이라는 얘기다. 저소득층 고용의 경우 노인 일자리가 중요하다. 소득 하위 20% 이하는 가구주의 평균 연령이 63세에 이르는 등 노인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인 일자리를 올해 51만명에서 오는 2022년 80만개까지 늘리기로 했지만 문제는 양이 아니다. 정부가 직접 공급하는 공공일자리는 환경미화·교통안내 등 단순업무가 많아 한 달 수당이 20만원대에 그치는 등 질이 열악하다. 따라서 민간 중심 양질의 노인 일자리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고용정책 전반에 있어서는 노동 이동성이 원활해지도록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