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투성이 노후건물 관리]'구두 권고'만 하는 지자체...일반 건물 강제점검도 못해

■'용산 붕괴 사고'로 본 문제점
인구 10만명당 건축공무원은 韓 5.4명에 美 25.7명
'지역건축안전센터' 도입 늦어져 미리 피해 못막아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상가건물 붕괴 현장에서 국과수 관계자 및 경찰 과학수사대원, 소방대원들이 합동감식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산구 한강로 2가의 4층짜리 상가 건물. 갑작스럽게 무너져내렸지만 붕괴 징조는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 건물의 한 세입자는 지난달 초 벽이 부풀어 오르고 물이 새자 용산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찍어 e메일에 첨부까지 했다”고 전했다. 현장을 둘러본 구청 공무원은 안전진단을 구두로 권고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20여일 후 건물은 완전히 붕괴됐고 세입자들은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었다. 그들은 “지난달 초 건축 관련 전문 인력이 현장을 둘러봤다면,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적극적이었다면 건물이 무너지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력 태부족에 전문성 없는 건축직 공무원=지난 2005년 국무조정실 연구보고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건축공무원 수는 한국이 5.4명으로 미국 25.7명, 호주 23명에 비해 매우 적다. 특히 제주도나 화성과 같은 경기권 신도시의 경우 지자체가 허가해야 할 건물에 비해 공무원이 적어 인력난을 겪고 있다.

한편 건축법 35조 3항에 따라 허가권자인 지자체장은 점검 대상이 아닌 건축물 중에서 안전에 취약하거나 재난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소규모 노후 건축물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에 대해 직권으로 안전점검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정 권한을 갖고 있어도 막상 개입 결단을 내리기는 힘들다는 게 지자체의 입장이다. 사유재산에 공권력을 투입하기에는 현장 공무원의 판단에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해당 법적인 내용은 있으니 결국 지자체장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미루고 용산구 관계자는 “민원인이 적극적으로 개입해달라는 추가 요청이 있어야 한다”면서 “향후에는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보완하겠다”고 맞섰다. 한편 해당 건물은 연면적이 301㎡에 불과해 건축법 시행규칙 301조와 시설물특별법의 정기 점검 대상이 아닌 허술한 법망도 사고를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건축행정 강화 목적 ‘지역건축안전센터’도 표류=이처럼 공무원의 미흡한 건축·구조 지식을 보완하기 위해 올해 4월19일부터 ‘지역건축안전센터’가 도입됐다. 하지만 지난 3월27일 입법예고 이후 두 달 넘게 시행규칙이 공포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토부의 시행령, 시행규칙이 내려오면 그에 따라 예산과 운영 조례를 만들 예정”이라면서 “빨라야 내년부터 운영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도 “4월 시행을 목표로 했지만 하부규칙 마련이 늦어져 공포가 6월까지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역건축안전센터는 포항 지진 이후 지자체별로 건축물의 안전 강화를 위해 도입이 계획됐다. 그간 지자체가 건축물 허가를 낼 때 외부 건축가나 구조기술사에게 대행을 맡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후 건축물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지역건축안전센터에 전문가를 고용, 지자체의 건축 구조 안전 업무를 전담시키는 게 목적이다.

지역안전센터가 실제 가동돼 지난달 초 용산 상가 현장에 담당 공무원과 함께 전문가가 동행했다면 상황의 시급성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남는 지점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10월부터 세종시에서 한 달간 시험 사업을 통해 건축허가 및 신고가 전체 처리 건수 대비 약 15% 이상 개선 효과를 냈다.

◇“일반 건물 강제점검 시스템 필요”=다만 도입 예정인 지역건축안전센터도 한계가 분명하다. 센터 설치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세종시, 대전시 서구, 경기시 안양 등 19개 지자체만 3년에 걸쳐 차차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역별 인력수급 불균형 문제도 있다. 지자체별로 건축물 허가 건수 대비 소요 인원을 산정했지만 건축사와 구조기술사 모두 수도권에 밀집해 있어 지방은 상시 고용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역건축안전센터도 도입 과정에서 지자체가 운영 원칙을 미리 마련하지 않으면 또다시 허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창순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의 경우도 공무원이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확인했더라면 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공동주택의 경우 20년 이상 건물은 정기 점검하듯 일반 건물에도 급박한 상황에는 강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명·서종갑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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