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의 공매도 미결제 사고와 관련해 검사에 착수했다. 공매도 미결제와 관련해 외국계 증권사가 검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무차입 공매도는 그동안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이 잡히지 않았다. 앞서 금융당국이 공매도 대책을 발표하며 무차입 공매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던 만큼 검사 결과에 따라 파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4일 금융감독원은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의 결제 불이행 사태와 관련해 무차입 공매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검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날 검사 인력을 골드만삭스에 파견했으며 오는 15일까지 검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동안 외국계 증권사들의 공매도 미결제 사고는 대부분 착오매매에 의해 발생했으며 금융당국 조사 단계에서 마무리됐다. 한국거래소가 공매도 미결제를 확인해 금감원에 통보하면 자본시장조사국에서 조사를 진행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도에 그쳤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공매도에 불신이 여전한 만큼 검사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무차입 공매도 가능성 등을 포함해 주식 대차 및 공매도 주문의 적정성을 점검하고 위탁자인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의 주식 공매도 경위에 대해서도 확인할 예정이다.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은 지난달 30일 해외 계열사인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로부터 공매도 주문을 받아 이를 체결했으나 지난 1일 해당 주식을 구하지 못해 제때 결제를 이행하지 못했다. 총 규모는 60억원(코스피 3종목·코스닥 17종목)이다.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은 미결제 종목 20개 종목 중 19개 종목을 1일 매수했고 1개 종목은 이날 차입해 결제를 완료했다.
골드만삭스의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팔고 일정 기간 후 되사서 갚는다’는 합법적 테두리와 단계를 밟아야 가능하다는 원칙이 무시됐다. 골드만삭스는 주식을 빌리지도 않은(주식 대차 미확정) 상태에서 공매도 주문이 체결됐고 뒤늦게 주식 결제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이 드러났다. 시장에서는 불과 두 달 전 유령주식 사태가 벌어졌던 삼성증권 사고를 떠올린다. 올해 4월6일 삼성증권은 우리사주 배당 과정에서 주당 1,000원 대신 1,000주를 배당하며 유령주식 28억1,000만주가 생겨났다. 존재하지도 않는 주식이 발행돼 501만주가 매도됐다. 전문가들은 골드만삭스도 주식을 빌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공매도 주문이 체결되며 또 한번 시스템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공매도 매매 주문 단계에서 각 금융사의 계좌 내 잔액 수치가 맞는지 확인하는 시스템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주식을 빌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공매도 주문을 낸다고 하더라도 이를 차단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파장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서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하는데다 앞서 지난달 28일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공매도 대책을 발표하며 무차입 공매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무차입 공매도가 아닌 단순 실수에 의한 거래였다 해도 내부통제 부실 등으로 제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공매도 규제 위반으로 확인된다면 기관 제재와 과태료 등을 부과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인터넷 게시판에 ‘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 사고로 드러난 무차입 공매도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다는 게 골드만삭스 사고로 확인됐다’는 글을 올리고 댓글이 넘쳐났다. 삼성증권 배당주 사고 이후 공매도 폐지에 대한 여론에 금융당국이 개인의 시장참여 확대로 무마시키기는 했지만 공매도에 대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여전하다는 것이 드러난 만큼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