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의 작은 커피 전문점이었던 스타벅스를 77개국에 2만8,000여개 매장을 거느린 ‘커피 제국’으로 키운 하워드 슐츠 회장이 30여년 만에 영욕을 함께한 회사를 떠난다. 인종차별과 성 소수자, 소외계층 문제 등 평소 사회적 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냈던 슐츠 회장은 퇴임 후 계획에 대해 “자선사업부터 공공서비스까지 다양한 옵션의 선택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미 언론은 민주당 ‘잠룡’으로 분류돼온 그가 오는 2020년 대선 출마를 위한 포석을 깐 것이 아니냐며 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스타벅스는 4일(현지시간) 슐츠 회장이 오는 26일자로 사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슐츠 회장은 사임에 앞서 메모 형식의 공개서한을 통해 “스타벅스는 수백만 명이 커피를 마시는 방식을 바꿨다. 이것은 진실”이라며 “우리는 전 세계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을 개선했는데 여러분과 함께해 가능했다”고 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후임으로는 미국 대표 백화점 체인인 JC페니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마이런 얼먼이 지명됐다. 슐츠 회장은 명예회장직을 유지한다.
슐츠는 전 세계의 성공한 기업가 중 경영혁신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이다.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닌 공간과 문화, 경험을 파는 기업’이라는 경영철학과 전략을 앞세워 초창기 불과 11개이던 점포를 전 세계 2만8,000여개로 확장한 것이 이를 증명하는 경영성과다. 그사이 주가는 210배 뛰었다.
스타벅스를 상징하는 인물이 된 슐츠 회장은 종종 창업자로 오해받지만 사실 그는 복사기 제조업체 제록스의 판매대리인과 스웨덴 커피메이커 제조사인 해마플라스트 미국 부사장 등을 지내다 우연히 접한 스타벅스 커피 맛에 반해 지난 1982년 마케팅 책임자로 뒤늦게 합류했다. 1986년 스스로 커피전문점 일지오날레를 창업하기도 했지만 1987년 아예 스타벅스를 인수해 1992년 스페셜티(고급 커피) 회사 최초의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후 2000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그는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 2008년 CEO로 복귀해 오늘날의 스타벅스를 일궈냈다.
명망 높은 기업가인 슐츠의 퇴임이 관심을 끄는 것은 ‘커피 황제’의 은퇴라는 점에 더해 그가 2020년 미 대선을 앞두고 범민주당의 잠룡 중 유력한 후보로 꼽히기 때문이다. 슐츠 회장은 크게 성공한 기업가이면서도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일찌감치 민주당 대선 후보군으로 거론돼왔다. 그는 직원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고 시간제 직원들에게도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등 사내 복지향상에 앞장서는 진취적인 행보로 주목받은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동성 결혼이나 총기 규제 문제 등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견해도 적극적으로 밝혀왔다.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는 “좀 더 열정적인 정부가 필요하다”는 정치적 발언으로 대선 출마설에 불을 지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명령’에 반기를 들며 “향후 5년간 전 세계 난민을 1만명 고용하겠다”고 선언해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최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는 공직 진출 의사를 직접 내비친 바 있어 갑작스러운 퇴임과 맞물려 슐츠의 대권 도전 가능성에 갈수록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당시 그는 “다음 챕터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내가 (사회에) 되돌려주는 데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라며 “다양한 옵션을 생각할 것이고 여기에는 공직도 포함될 수 있다”고 강조했었다. NYT는 “슐츠가 스타벅스를 떠나지만 그가 2020년 대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추측은 더 거세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