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에 16강은 늘 잡힐 듯 말 듯한 신기루 같은 목표였다. 홈그라운드에서 치른 2002한일월드컵에서 16강·8강을 넘어 4강 신화를 남겼지만 이후 세 차례 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이 한 번뿐이다. 신태용호의 조별리그 전망도 안갯속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1위 팀이 32개국이 겨루는 본선에 나가 16개 나라 안에 든다는 것은 사실 요행을 바라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단 3경기로 조별리그 통과가 결정되는 만큼 월드컵은 예측 불가능한 각종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우리와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전술과 선수단의 컨디션·사기 관리 등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다면 그 변수를 우리에게 이로운 쪽으로 끌고 올 수 있다. 2010남아공 대회 이후 8년 만의 16강을 두드리는 한국축구의 조별리그 기상도를 경영학에서 기업을 분석하는 기법인 SWOT(강점·약점·기회·위협 요인) 방식으로 짚어봤다.
■톱클래스 윙어 손흥민-돌파력 좋은 황희찬
호흡척척 콤비…7일 볼리비아전 투톱 출격
◇Strength(강점:검증 마친 ‘손-황’ 듀오)=손흥민(26·토트넘), 황희찬(22·잘츠부르크)의 ‘손-황’ 듀오는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공격 콤비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2골로 첼시의 에당 아자르, 레스터의 리야드 마레즈 등과 득점 10위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다. 시즌 전체 기록은 18골 11도움으로 한 시즌 개인 최다 공격 포인트를 썼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최근 서울경제신문 인터뷰에서 손흥민에 대해 “제가 현역 때 대표팀에서 처음 만났던 2011년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지금은 세계 톱클래스 윙어 중 한 명이 됐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 축구연구소가 발표한 이적 가치에 따르면 손흥민의 가치는 9,020만유로(약 1,131억원)로 전체 39위다. 아시아인 중 유일한 톱100 진입.
신태용 감독은 부임 후 끊임없이 손흥민의 공격 파트너를 시험한 결과 황희찬을 낙점했다. 황희찬은 지난달 28일 온두라스와 평가전(2대0 승)에서 문선민(인천)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한 데 이어 1일 보스니아전(1대3 패)에서는 이재성(전북)의 만회골을 도왔다. 특히 손흥민의 스피드를 활용하는 센스 있는 연결은 물론 특유의 저돌적인 돌파로 수비진을 끌고 다니며 동료들에게 기회를 열어줬다.
7일 오후9시10분 볼리비아(FIFA랭킹 57위)와의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평가전에도 황희찬은 손흥민의 짝으로 선발 출격할 것으로 보인다. 오스트리아는 황희찬에게 안방이나 다름없다. 2014년 말 건너가 지난 시즌까지 오스트리아리그 3시즌 연속 우승을 경험했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8강 라치오전에서 골 맛을 보는 등 시즌 전체 13골을 터뜨리며 주축 공격수로 자리 잡았다. 잉글랜드 리버풀·토트넘 등의 관심을 받고 있는 황희찬으로서는 이번 월드컵이 빅리그 진출의 오디션 무대이기도 하다.
■4-4-2 훌륭하지만 스리백 수비 취약
수비진 체력 강화·조직적 움직임 필수
◇Weakness(약점:스리백 수비 라인)=스리백 전술 완성도는 대표팀의 아킬레스건이다. 1일 보스니아와의 평가전에서 스리백을 썼지만 미숙한 호흡에 한 명에게 3골을 내줬다. 대표팀은 포백 전술인 4-4-2를 썼을 때 결과가 가장 좋았다. 그러나 4-4-2가 기본 전술인 스웨덴을 잡기 위해서는 대응 전술인 스리백에 능해야만 한다. 스리백은 3명의 중앙수비를 두는 전술이지만 양쪽 윙백까지 포함해 수비 때는 파이브백을 가동할 수 있다. 그러나 공격 때는 윙백이 공격 진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중앙수비가 측면 수비까지 담당해야 한다. 잘못하면 역습 때 측면이 뚫릴 위험이 크다. 보스니아전에서 그 위험을 실감했다. 완성형 스리백을 위해서는 일단 수비진의 강철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조직적인 움직임과 소통이 필수다.
신 감독은 사전캠프가 차려진 오스트리아에서의 전술훈련을 철저하게 비공개로 실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베스트11과 전술 구상을 거의 마쳤다”는 말로 자신감을 드러내며 11일 있을 세네갈과의 마지막 평가전을 실전처럼 치르겠다고 예고했다. 세네갈전은 전면 비공개로 치러진다. 핵심 수비수인 장현수(27·FC도쿄)는 6일 “그동안의 우리 경기를 보면 비난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책임감을 느끼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월드컵 무대다. 반전을 일으키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거침없는 드리블·슈팅’ 스무살 이승우
넓은 시야·승부욕으로 기회 포착해야
◇Opportunity(기회:겁없는 스무 살 이승우)=A대표팀에 지난달 처음 발탁된 이승우(20·엘라스 베로나)가 최종 엔트리 23명에까지 들자 가장 놀란 것은 F조 상대국 언론을 포함한 해외 언론이었다. 그는 A매치 경험이 단 2경기다. 이번보다는 2022카타르월드컵이 더 어울리는 영건이다. 그러나 지난해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이승우와 동고동락했던 신 감독은 과감하게 그를 러시아에 데려가기로 했다. 이승우 스스로 쟁취한 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는 온두라스와 A매치 데뷔전에서 손흥민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거침없는 드리블과 돌파, 슈팅은 물론 기대 이상의 시야와 투쟁심이 코칭스태프는 물론 팬들까지 매료시켰다. 당연히 본선 무대는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잃을 것 없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이승우와 대표팀에 모두 기대 이상의 기회가 올 수 있다. 월드컵은 역대로 깜짝 스타를 위한 무대이기도 했다. 에이스 상징인 등번호 10번을 받은 이승우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감 있게 형들과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스웨덴이 최근 A매치에서 2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치고 부상자가 많은 멕시코도 답답한 골 결정력을 노출하는 등 상대국이 생각보다 주춤한 것도 우리에게는 기회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연막일 수 있다. 가르시아 에르난데스(스페인) 전력분석 코치 등 코칭스태프에 한 꺼풀 벗긴 뒤 분석하는 통찰이 요구되는 이유다.
■UAE 득점왕 베리·잔뼈 굵은 에르난데스…
스웨덴·독일·멕시코, 확실한 골잡이 보유
◇Threat(위협: 한국 골문 겨누는 킬러들)=인정하기 싫어도 한국은 F조 스웨덴·독일·멕시코가 벼르는 공통의 승리 제물이다. 세 팀은 모두 확실한 골잡이를 보유했다. 한국의 골문을 향해 칼끝을 겨눈 F조 ‘킬러’들은 위협요소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상대 공격이 특정 선수에게 집중되며 흐름이 단조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잘만 봉쇄하면 예상 밖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있다.
첫 상대 스웨덴은 마르쿠스 베리(32·알 아인)가 경계 대상이다. 유럽예선 A조에서 팀 내 최다인 8골을 터뜨린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본선행 티켓을 획득하는 데도 기여했다. 본선 진출 확정 이후 다소 주춤한 모습이지만 언제든 득점 본능이 깨어날 수 있다. 2016-2017시즌 그리스 파나시나이코스 소속으로 정규리그 득점왕(22골)을 차지했고 2017-2018시즌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 아인에서 뛰며 다시 득점왕(25골)에 올랐다.
멕시코 공격수 중에는 하비에르 에르난데스(30·웨스트햄)가 눈길을 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에서 103경기 37골을 넣었고 이후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와 레버쿠젠(독일)을 거쳐 잉글랜드 웨스트햄에서 뛰고 있다. ‘치차리토(작은 콩)’로 불리는 에르난데스(175㎝)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28경기 8골을 넣었다. 최근에는 라울 히메네스(벤피카)도 최전방에 중용되고 있다. 188㎝의 히메네스는 2012런던올림픽 금메달 주역이다.
FIFA랭킹 1위 독일에는 어느 팀에 가도 에이스 대접을 받을 공격 자원이 즐비하다. 토마스 뮐러(29·바이에른 뮌헨), 메주트 외칠(30·아스널), 율리안 드락슬러(25·파리 생제르맹), 레온 고레츠카(23·뮌헨), 마리오 고메스(33·슈투트가르트) 등 최전방과 2선 자원이 넘쳐난다. 핵심인 뮐러는 2010년부터 나온 A매치 89경기에서 37골을 터뜨렸다. 2010남아공월드컵 5골(1위), 2014브라질월드컵 5골(2위)을 기록한 그는 이번 유럽예선에서도 5골을 터뜨려 독일의 10전 전승을 이끌었다.
/양준호·박민영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