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낙태죄 폐지-반대

박유경 경희대 의학영양학과 교수
무조건 폐지 대신 제도·인식개선 선행을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 당사자인 여성과 의료진에게 죄를 묻는 낙태죄의 폐지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은 낙태한 임부를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에, 임부의 동의를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 등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추정한 한 해 낙태 수술 건수는 16만건(2010년 기준)에 이르지만 실제 적발하기 쉽지 않아 낙태죄 사문화 논란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여성·시민단체의 강력한 폐지 주장에도 법무부는 지난달 말 6년 만에 헌법재판소에서 재개된 헌법소원 심판 공개변론에서 낙태 급증을 막기 위해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폐지 찬성 측은 여성이 민주시민의 기본권인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지킬 수 있도록 국가와 남성의 책임을 외면한 낙태죄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현재도 건강문제·성폭력 등에 의한 임신은 합법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만큼 생명 존중 차원에서 낙태죄가 존속돼야 한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지난 1954년 제정된 형법 제269조 및 270조에서는 ‘낙태의 죄’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와 같은 맥락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낙태가 시행됐을 때 형법에 따라 처벌의 대상자가 의료인이나 엄마가 되기 때문에 수많은 여성은 이에 대해 불편해하며 지난해부터 ‘낙태죄 폐지’라는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즉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원치 않는 임신이나 경제적 이유 등으로도 낙태를 법에 저촉되지 않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상황에 대해 사회 전반적인 제도나 인식 개선에 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고 그냥 정치적 시류를 타고 낙태법의 폐지를 주장하거나, 그것이 여성 자기결정권의 확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많은 아쉬움이 앞서 몇 가지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일단 낙태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의 인식 개선이나 정부의 노력으로 달라질 수 있는 부분들을 함께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첫째,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재 낙태법이 여성들을 모두 불법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모자보건법 제14조 의해 형법 제269조의 구성요건에 대한 예외적 허용조건이 제시돼, 예를 들어 강간이나 산모의 건강을 위협하는 등의 위기사항에 대해서는 낙태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둘째, 낙태죄 폐지 주장에 앞서 남성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는 점이다. 즉 태아와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남성의 책임을 명확히 제도화하고 정책에 반영해 임신이라는 인생 여정의 매우 중요한 사건을 여성이 혼자 떠맡아야 하는 부담스러운 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낙태죄가 폐지됐을 때 남성의 책임은 더욱 물기 어려워지며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여성과 남성’의 권력관계에서 여성을 더 자유롭지 못하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점차 다양해지는 가족형태 내에서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용납과 지원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출산과 육아가 정상적인 기혼부부라는 울타리에서 이뤄지는데 이외에도 비혼 가정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증가함에 따라 그러한 상황들에 대해 사회가 더 유연하게 수용할 준비가 돼야 할 것이다. 미혼모로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이 인생의 낙오자처럼 인식되지 않는 주변의 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비공개로 진행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라가 그 아이들을 다 키워줄 준비가 돼 있다면 낙태를 왜 하겠느냐”고 반문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이는 비단 문 대통령의 ‘저출산 문제 극복 방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는 여성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가 같이 부담해야 할 책임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나라,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며 서로 돕는 나라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미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결정한 낙태죄를 다시 폐지하자고 외치기 전에 사회적·경제적으로 시도해볼 만한 다양한 정책들을 먼저 적용해보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미국에서 해마다 진행돼온 ‘생명대행진(March of Life )’의 2018년 구호는 ‘사랑이 생명을 구한다(Love Saves Lives)’였다. 어렵고 고민되는 상황에서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희생적인 결정이 담긴 사랑만이 생명을 살리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이런 찬반 논란을 할 수 있는 것도, 의견을 제시하는 자리에서 글을 쓰고 또 읽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우리가 낙태당하지 않고, 수정아로부터 뱃속에서 제거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