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서민들이 생계자금 등 급전 마련을 위해 카드론 등 상대적으로 융통이 쉬운 고금리 대출로 몰리고 있다. 가계대출 규제의 ‘풍선효과’지만,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등과 맞물리면 이들 고금리 차주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 가계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수익이 줄어든 일부 카드사들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기보다 기존의 영업행태에 편승하면서 카드론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삼성·롯데·우리카드 등 7개 전업카드사의 올 1·4분기 카드론(장기카드대출) 취급액은 10조6,40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8조 9,976억원) 18.3%나 급증했다. 분기별 카드론 취급액이 1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택담보대출 규제에다 가계대출 총량규제, 총부채원리금상환능력비율(DSR) 규제 등이 도입되면서 당장 목돈이 필요한 차주들이 한도만 남아 있으면 언제든지 손쉽게 대출할 수 있는 카드론으로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임진 금융연구원 가계부채연구센터장은 “카드론 등 소액 고금리대출은 생활비를 위해 주로 쓰이는 것으로 보이는데 소득이 크게 늘지 않다 보니 이런 고금리로 돈을 빌리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카드론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카드사들이 이 틈을 비집고 금융당국의 규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카드론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드론은 연평균 14% 안팎의 이자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제도권 내 고금리 상품이다. 이 때문에 카드사가 고금리 대출을 늘리면 늘릴수록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영향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실제 우리카드의 경우 전업카드사 7곳 가운데 카드론 취급액 증가율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카드의 올 1·4분기 카드론 취급액은 1조5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7,530억원) 33.6%나 급증했다. 업계 전체 증가율(18.3%)보다 2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현대카드와 삼성카드 역시 같은 기간 카드론 증가율이 각각 26.1%, 25.5%가 급증했다. 1위인 신한카드도 21.2%의 증가율을 보였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실적이 축소된 카드사들이 외형과 이익보전을 위해 카드론 등 고금리 상품에 대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이 대출 총량규제(전년 대비 7% 이내로 대출 증가율 조정)를 강화할 때는 카드사들이 눈치를 보다가 약간 느슨해지는 틈을 타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해 잇따라 뛰어들면서 1·4분기에 카드론 규모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지난해 말 대출 총량규제로 대출을 늘리지 못한 카드사들이 1·4분기에 앞다퉈 공격 영업을 하다 보니 한꺼번에 카드론이 몰린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국이 가계대출을 억제하라고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금리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형이 작은 카드사들은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카드론 등과 같은 고금리대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파트 잔금 부족으로 한 차례 카드론을 썼는데 이후 주기적으로 카드론 재사용을 권하는 전화·문자가 온다”는 등 카드사들의 영업행태를 지적하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침체 가능성은 물론 고금리대출의 경우 부실 우려가 높은 만큼 면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