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입 공매도’ 의혹을 받고 있는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공매도 당일 코스피, 코스닥 350개 종목에 공매도 물량을 쏟아낸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계 기관 한 곳이 단 하루 동안에만 시장에 타격을 입힐 만큼의 공매도를 하고 있다는 의미로, 공매도 거래가 ‘기울어진(개인투자자에 불리한) 운동장’ 수준을 넘어 ‘링’ 자체가 다름을 재확인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골드만삭스증권 서울지점(한국지점)은 총 350개의 코스피·코스닥 상장 종목에 대한 공매도 주문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골드만삭스가 결제 마감일(6월1일)까지 최종적으로 갚지 못해 미결제 처리된 것이 20개 종목 138만7,968주인 점과 종목별 공매도 수량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도 전체 공매도 거래량은 최소 1,000만주에 달하거나 그 이상일 것으로 금융당국 등은 추산하고 있다. 웬만한 종목, 그것도 거래량이 ‘터진(급증한)’ 종목의 하루 거래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도 의혹이 이는 지난 달 30일 삼성전자의 공매도 물량 258만3,067주의 4배 가까운 공매도 물량을 쏟아낸 것이다. 물론 공매도 대금 총액은 종목별로 주가가 차이가 커 추산이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 검사반은 지난 4일부터 구체적인 공매도 주문 주식 수와 금액을 파악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미결제 주식의 총액인 60억원 자체가 이미 이전 공매도 미결제 사례들과 비교해 규모가 유례 없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1조원까지도 가능하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규제를 풀긴 했지만 불공평한 상황을 뒤집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골드만삭스 사례가 빙산의 일각일 뿐인 가능성 역시 제기된다. 공매도할 주식을 빌리는(대차) 주체인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은 주식을 빌려주기로 한 기관이 갑자기 거래를 번복하면서 결국 ‘펑크’가 났고, 최종적으로 이를 메꾸지 못했다고 금감원 측에 미결제 사유를 소명했다. 당일은 이탈리아 정세 불안이라는 악재가 터지며 글로벌 증시가 크게 출렁였던 날로, 결국 각 기관들이 급박하게 공매도 전략을 짜느라 분주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또 대량의 공매도를 위한 대차 거래가 이렇게 허술하게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개인투자자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공매도가 시장 왜곡 방지 등의 긍정적인 요인이 있다 해도 대차여부, 규정 준수 등의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매도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거래 기법이고, 고평가된 주식을 단기간의 조정을 통해 장기 하락을 막는 순기능이 있는 만큼 공매도 폐지는 무리라는 것이 금융당국의 분명한 입장이다. 그러나 거래량이 워낙 방대해 현재 공매도가 규정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책임은 사실상 거래 수탁자인 증권사가 지고 있는 실정이다. 공매도와 연관된 불공정거래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도 따라서 매우 미진하다. 순기능 강조가 머쓱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외국계 투자사의 경우 (공매도 거래 시) 증권사에 ‘주식을 대차했다’고 말하면 철저한 확인 절차도 없이 공매도가 이뤄지는 것이 관행”이라고 말했다. 빌리지도 않은 주식을 파는 무차입 공매도가 충분히 가능한 환경인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주식 매매제도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자기·위탁매매 주문 집행 시 △일반 매도와 공매도 구분 △수시·정기적으로 이상 거래를 위탁자 및 신탁·보관기관에 확인 △필요 시 준법확약서 징구 등의 증권사의 확인 의무를 강화하기로 한 것도 이런 허술한 환경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일본과 홍콩에서도 증권사가 엄격한 확인 의무를 지고 있다.
하지만 차입 여부 확인부터 법규 준수 여부 점검까지 증권사가 모두 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국거래소는 최근 1년 동안 공매도 행위규제 위반 및 이상 거래 관련 심리·감리 건수가 0건이었다. 주식 보유잔고 현황, 대차 거래 내역 등을 은행에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다. 시장 감시기관인 거래소도 역부족인 현황 점검을 증권사에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금융위는 거래소와 예탁결제원, 증권금융, 코스코 등 유관기관이 모두 참여한 주식 잔고·매매 수량 모니터링 시스템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련해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이상 거래를 잡아낸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비정상적인 거래를 걸러낼 수 있을 뿐 불공정 여부 조사는 전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상 거래 감지가 잘 된다고 다음 단계인 조사까지 수월해진다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무차입 공매도를 했더라도 제재가 솜방망이에 그치는 점 역시 문제다. 당장 골드만삭스도 무차입 공매도로 밝혀질 경우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골드만삭스 인터내셔널이 금융사가 아닌 투자사인 만큼 관련자나 해당 임·직원에 대한 금융당국 차원의 제재는 불가능하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