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업무 오찬을 마친 뒤 대화를 나누며 산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백악관 방문을 요청했다./로이터연합뉴스
12일 오전7시50분(현지시각)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 밸리윙 출입구 입구. 대기하고 있던 경찰차와 오토바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곗바늘이 오전8시를 넘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탑승한 ‘비스트’가 모습을 드러냈고 역사적인 만남을 위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로 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기 중이던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직선거리로 570m 떨어진 세인트레지스호텔에 머무르고 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12분 정도 늦게 출발했다. 김 위원장의 차량 행렬 역시 경찰 오토바이 수십 대의 엄호 속에 센토사섬으로 움직였다.
두 정상의 숙소인 샹그릴라호텔과 세인트레지스호텔에서는 이들이 떠나기 직전까지 삼엄한 경계가 이뤄졌다. 샹그릴라호텔 로비에는 미국 백악관의 정예 스나이퍼팀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머무르는 밸리윙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완전통제된 채 무장경찰과 호텔 관계자 등이 주변을 지켰다. 오전7시30분께 미국 정상회담 관계자들 사이에서 “모두 대기 중”이라는 말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가 별도의 건물로 분리된 샹그릴라호텔과 달리 북한 관계자와 일반인의 동선이 섞여 있는 세인트레지스호텔의 보안과 경호 강도는 더욱 높았다. 정문 검색대에서는 공항 탑승만큼 강도 높은 X레이 검색과 몸수색이 진행됐다. 호텔 로비에는 전날 밤 김 위원장이 ‘깜짝 시티투어’를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라인이 만들어져 일반인들의 동선을 통제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의 출발에 앞서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최강일 외무성 북미국장대행 등 북한의 핵심 외교 라인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함께 오전7시54분 호텔 밖으로 이동했다. 김 위원장의 출발시각이 가까워지면서 호텔 로비에 대기 중인 북한 경호원들은 점차 늘어났다. 일부 경호원들은 방탄가방을 손에 든 채였다.
이윽고 오전8시12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김 위원장은 다소 긴장한 듯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뒤를 따랐다.
오전9시5분 싱가포르의 휴양지인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시작한 북미 정상. 회담장 입구 레드카펫 양쪽에서 서서히 걸어 나온 두 정상은 12초간 악수했다. 근접 취재를 맡은 미국 ‘폴리티코’는 김 위원장이 악수를 하러 걸어가며 영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통령님(Nice to meet you, Mr President)”이라 말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해당 매체 소속 엘리나 존슨 기자는 “다른 사람들은 영어로 발언한 사람이 김 위원장이 아닌 통역사라고 보고 있다”고 부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른손으로 김 위원장의 손을 잡은 채 왼손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친근한 제스처를 취하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던 김 위원장도 금세 여유를 찾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회담 모두발언에서 “회담은 엄청나게 성공적일 것”이라며 “북한과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활짝 웃어 보인 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며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이는 김 위원장이 과거 ‘김정일 정권’의 협상 방식이 잘못됐음을 시인하는 파격적인 발언이다. 전 정권과 선을 긋고 미국에 신뢰를 심어주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그 말이 맞다”고 화답한 뒤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이어 김 위원장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웃기도 했다.
/싱가포르=특별취재단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