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싱가포르=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3일 방한해 “북한의 비핵화는 2년 반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비핵화 목표 시간표를 제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심도 있는 비핵화 검증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북한이 성실한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한미연합훈련도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을 도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국제사회에서 쏟아지자 진화에 나선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오산 공군기지를 통해 방한한 후 “우리는 2년 반 안으로 (북한의) ‘주요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심층적인 검증이 있을 것이라는 점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며 “다음주쯤 북한과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구체적인 협상 시점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 공동합의문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 중 ‘VI(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가 빠졌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문구에 CVID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어구에 대해서 논쟁할 수 있겠지만 공동합의문에 그 내용이 있다고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대해 ‘성실한 협상’이 조건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서) 말할 때 나도 거기에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진지한 대화가 지속되는 게 (훈련) 동결의 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북한이 더 이상 진지하지 않다고 결론 낸다면 훈련 중단이 더는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점을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서 모호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으로 예정된 한중일 고위관료와의 회동이 ‘CVID 누락’에 대한 해명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14일 문재인 대통령을 찾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도 잇따라 회동한다. 방한 일정을 마치면 곧바로 중국으로 향한다. 북미 합의 이행을 총괄 책임지고 있는 만큼 남북은 물론 주변국과 대북 문제를 사전 조율한 후 후속조치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외교부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방한 첫 일정으로 14일 오전 청와대를 방문한다. 폼페이오 장관의 문 대통령 예방은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했던 일정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일 외교장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성 발언에 대해서도 설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일 기자회견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한미일 삼각 공조 과시를 위해 한미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도 준비 중이다. 고노 외무상도 이를 위해 이날 오후 입국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국 다음 일정으로 중국행을 준비하고 있다. 무역·지적재산권 등 미중 현안 논의도 목적이지만 이번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중국이 북한 후견인 역할을 톡톡히 했던 만큼 중국과 경제제재 등 북한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실무회담을 곧바로 착수하기로 한 만큼 방중 과정에서 북한 측과 만날 가능성도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 공동합의문에 양국을 통틀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앞으로 북미 합의 이행의 총괄 책임자 역할을 하게 된 만큼 폼페이오 장관의 어깨가 무겁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브래들리 밴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국제금융기구의 북한 지원 문제에 대해 “국제금융기구에 미국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며 “폼페이오 장관이 재무부와 협의해 국제금융기구에 북한을 도와줘도 될 시점이라고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오는 8월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비롯한 한미연합훈련은 북미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중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한미 군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발언 이후 긴급 협의 채널을 가동해 연합훈련 계획을 변경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13일 전해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훈련 중단 발언과 관련해 “한미 간 긴밀한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며 “군 당국 간 협의 채널이 가동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국을 방문한 폼페이오 장관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방향과 다르게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한미연합훈련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싱가포르=정영현기자 권홍우기자 변재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