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상태에서 시동이 꺼진 오토바이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온 운전자에게 음주운전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에 따르면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온 것은 원동기를 ‘운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하다./출처=이미지투데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시동이 꺼진 오토바이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온 운전자에게 음주운전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에 따르면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온 것은 원동기를 ‘운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지난해 청주에 사는 A(24)씨는 만취 상태로 길을 걷다가 열쇠가 꽂힌 채 주차된 100㏄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A씨는 원동기 운전면허증도 없었지만, 무작정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당시 오토바이는 배터리가 방전돼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A씨는 바퀴가 움직이도록 기어를 중립에 놓은 뒤 내리막길로 운전해 달아났다. A씨가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나는 모습을 발견한 주인 B씨는 뒤쫓아가 그를 붙잡았다.
A씨는 음주 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농도 0.147%의 만취 상태였다. 검찰은 A씨에게 절도와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및 무면허운전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청주지법 형사4단독 이지형 판사는 18일 오토바이 절도 사건 외에도 재물손괴, 주거침입, 폭행 등 다수의 죄를 저지른 A씨에게 징역 1년에 벌금 50만원을 선고했지만 이 판사는 A씨의 음주운전 및 무면허운전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사용 방법에 따라 엔진을 시동시키고 발진 조작을 하지 않았다면 오토바이를 운전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음주운전과 무면허운전죄를 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도로교통법에서는 자동차의 정의를 엔진 등 원동기를 쓰는 운송 수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오토바이를 포함한 자동차 운전은 원동기를 사용하는 행위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즉 시동을 끈 상태에서 기어를 중립에 놓거나 클러치를 잡은 상태로 오토바이를 ‘타력 주행’했다면 원동기를 운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A씨의 경우 ‘음주’는 했으나 법에서 말하는 ‘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다만 타력 주행 중 사람을 치는 등 사고를 내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법조계 관계자는 “타력 주행 중 사고를 냈다면 도로교통법이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위험 운전 치사상 등의 혐의로는 처벌이 어렵지만, 오토바이를 위험한 물건으로 봐 폭력행위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혁준인턴기자 hj7790@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