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학(앞줄 왼쪽)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8일 ‘중소기업 현장 방문 및 간담회’에서 인천에 위치한 중소기업인 현우산업의 시설을 참관하고 있다. /사진제공=중기부
“제조업도 어떤 제품을 생산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주 52시간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반도체 장비업체 D사 대표)
“미국의 애플과 구글의 개발자들도 필요할 때면 밤을 새워 일합니다. 현재처럼 3개월 미만의 탄력근로제만으로는 다양한 업종에서 발생하는 근무형태를 모두 수용하기는 어렵습니다.”(카메라 모듈 부품개발 E사 대표 )
18일 인천 남구 현우산업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인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서울경제 취재진을 만난 중소기업 대표들은 눈앞에 다가온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은 모두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으로 오는 7월1일부터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된다. 이들 기업은 중소기업 가운데 매출이나 종업원 규모 면에서 안정적인 단계에 접어든 중견기업 축에 속한다. 최근 변화하고 있는 노동환경에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하지만 이날 현장에서 만난 대표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가져올 혼란과 불확실성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카메라모듈부품 E사의 대표는 “우리 회사는 상대적으로 제조라인보다는 연구개발 인력이 많아 근무형태를 놓고 고심하는 일반 제조회사들에 비해 나은 상황”이라면서도 “근로시간 단축 이후 상황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대표 입장에서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최근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한동안 어디까지가 근로시간인지를 놓고 회사 내부에서 혼란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근로시간 단축을 업종 특성에 맞게 차등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반도체 장비업체 D사의 대표는 “같은 제조업이라도 반도체 부품은 업황과 원청회사의 주문에 따라 생산물량의 변동 폭이 심하다”면서 “최소 4~5년 이상인 선박 수주와 달리 반도체 설비는 여러 회사의 부품이 한 설비라인에 순차적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납기일의 변동성이 심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정부의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현장에 적용할 때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해 업종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로봇 개발업체 C사의 대표는 탄력근로제 도입을 촉구했다. 그는 “애플이나 구글 등 글로벌 기업에 근무하는 친구들을 보면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일한다”며 “좋은 제품을 내놓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자신의 시간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현재 최대 3개월간 사용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를 노사 합의만 있으면 최대 1년까지 사용하도록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며 “기업에 사람을 많이 뽑으라고 하지만 막상 기업이 필요로 할 때 인력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화장품 용기를 전문으로 제조하는 G사는 기존의 2조 2교대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장품 용기 산업의 특성상 기계를 24시간 돌려야 하는데 같은 조건에서 주 52시간을 적용하면 업무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3교대로 맞추면 직원들의 급여도 줄어들고 인건비 부담도 커져 경영상 타격이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 회사의 유동관(가명) 대표는 “3교대를 하지 않고도 공장 가동시간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지만 결국 인원을 추가로 고용한 후 주 52시간 근무를 적용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 회사는 주 52시간 근무를 맞추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직원들의 평일 근무일수를 기존 5~6일에서 4일~4일 반으로 줄였다. 이를 위해 공장설비를 기계화하고 150명의 추가 인원을 추가로 채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신규 채용이 계획대로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제조업체들이 너나없이 신규 인력 채용에 나서면서 가뜩이나 심각한 구인난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저임금 인상과 맞물려 인건비가 급증한 것도 고민이다. 그는 “올해 5월까지만 따져도 전체 인건비가 13.3% 올랐다”며 “지난해 이익률이 6.4%였는데 5월에는 1.9%밖에 되지 않는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대안은 납품단가를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자동차 부품업체인 H사는 해외 기업을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어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단가 인상을 요구하기 어렵다. 그는 “국내 대기업 중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중소기업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 아는 곳도 꽤 있어 납품단가 협상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해외 고객사는 ‘그건 너희 사정 아니냐’며 시큰둥하다”며 씁쓸해했다. 그나마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올려준다고 하면 다행이다. 자동차 업계처럼 완성차 업체까지 고통을 겪고 있는 산업에서 납품단가 인상은 요원한 일이다. 평택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로 현대자동차 등에 1차 벤더로 참여하고 있는 I사의 조용우(가명) 이사는 “전자든 자동차든 그 어느 곳도 납품단가를 올려주려고 하지 않는다”며 “완성차 업체도 어려워 아우성인데 납품단가를 올려주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3조 2교대 전환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조 이사는 “저희 고졸 초임이 연 4,000만원이 넘는데도 계속 생산직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한 번은 사무직에서 10명을 채용했는데 4명이 입사를 거부하더라”고 하소연했다. 인력을 뽑는다고 해도 막막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니 3조 2교대에 맞추면 인건비가 40%로 증가했다”며 푸념했다.
이날 예정시간을 30분 넘겨 간담회를 가진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최근 정부의 노동 정책과 관련해 기업인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여러분이 제안하신 탄력근로제와 관련해서 현행 3개월을 6개월로 늘리는 방안 등 보완책에 대해 관련 부처와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서민우·김연하기자 심우일기자 ingagh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