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국제설계공모를 주도한 서울시는 건축가와의 정식 계약 후 수권 소위 신청을 받아들이겠다며 한발 빼는 모양새다. 처음으로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국제설계 공모를 도입한 서울시가 행정상의 혼란을 방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재건축의 공공성만 강조한 채 정작 책임은 회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잠실주공5단지 국제설계공모안 당선작 조감도 /사진제공=UBAC조성룡도시건축
19일 업계에 따르면 잠실주공5단지 설계공모와 관련 서울시의 책임 회피가 되풀이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말 국제설계공모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작품 번호만 고지해 당사자만 알 수 있게 통지됐고 시는 당선작 설계자인 조 건축가에게 설계안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비밀 서약서’를 받아갔다. 건축주인 조합에도 한 달여 뒤인 4월말에야 자료가 이관됐다. 그마저도 이미지 자료는 더 늦게 전달돼 조합원들이 이를 확인한 시점은 6월2일 정기총회 2주전인 5월19일께였다. 뒤늦게 실망스러운 당선작을 맞닥뜨린 조합원들의 혼란이 가중됐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시는 공모전을 대행했을 뿐이며 공개 주체는 발주처인 조합이 돼야 한다”라며 “게다가 최종 결과가 아니어서 부정확한 자료를 공개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조합원 총회를 전후 해 조합원 간 내홍이 불거졌을 때도 서울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반대 조합원들은 설계안의 외형에 대한 불만은 물론 “건축가가 조합원의 사적 재산권 과도하게 침범하려고 한다”며 반발했다. 공모 대상인 올림픽로와 잠실대로 쪽 대지 설계와 관련 조합측이 이를 추후 수정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갈등이 고조됐지만 서울시는 총회에서 당선작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될 때까지 “민간 사이 계약이니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했다. 이에 대해 조 건축가는 “서울시가 개입할 의무는 없지만 국제설계공모에서 어디까지가 서로의 역할인지 조금 더 분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조 건축가의 설계안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됐지만 이달 말 수권소위 통과를 추진하는 조합의 계획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시가 조 건축가와 조합이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수권소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수권소위 통과 후 조합이 계약을 체결 안 하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반면 조합측은 “서울시가 수권소위에서 토지이용계획을 수정해 주지 않고 설계 계약을 맺게 되면 조합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개월째 계속되는 잠실주공5단지 설계안을 둘러싼 논란은 서울시의 미숙한 행정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민간사업에 관 주도로 국제설계공모를 도입하다 보니 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면서 “서울시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민간의 자율을 보장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결국 서울시도 대안 마련을 위해 4월부터 ‘공공지원 설계자 선정기준 개정안’을 행정예고 해 시가 재건축 설계공모를 주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검토 중이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