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역대 월드컵에서 한국이 토너먼트에 진출하거나(2002·2010년) 근접했을 때(2006년)는 모두 첫 경기 승리가 동반됐다. 조별리그 1차전 승리는 남은 2경기 운영 전략에 하늘과 땅 수준의 차이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2010남아공월드컵이 대표적이다. 그리스에 2대0으로 승리한 한국은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1대4로 완패했다. 3차전에서 나이지리아와 접전 끝에 2대2로 비기며 골 득실이 마이너스임에도 16강에 올랐다. 아르헨티나가 3전 전승을 거둔 도움도 있었다.
신태용(사진) 감독에게는 정말 시작이 반이었다. 그는 스웨덴전 ‘올인’을 선언했었다. 이탈리아·프랑스를 잡을 정도로 수비 완성도와 조직적 플레이가 인상적이지만 스웨덴은 공격의 매서움이 멕시코·독일만 못했다. 소위 ‘비벼볼 수 있는’ 전력 차의 팀이었다. 전력 분석과 전술 대비도 스웨덴을 가장 많이 의식했다. 양 팀의 치열한 정보전은 ‘트릭’과 ‘스파이’ 논란으로 극대화됐다. 스웨덴도 한국을 잡지 못하면 16강 도전에 빨간불이 켜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승점 3점을 가져간 것은 스웨덴이었다. 단조롭지만 자신들의 강점을 계속 밀어붙였고 월드컵 사상 처음 도입된 비디오판독시스템(VAR)이 페널티킥을 안겼다. 신 감독은 스웨덴의 높이를 의식한 대응 전술을 준비했지만 전반 15분까지 경기를 주도하고 끝났다. 박주호(울산)의 이른 부상과 교체는 준비했던 후반전 전략을 크게 흔든 불운이었다. 유효슈팅을 1개도 기록하지 못한 카운터어택 중심의 공격 전술은 완성도가 낮았다.
한국은 스웨덴전을 놓치면서 절반, 아니 그 이상의 계획이 어그러졌다. 스웨덴에 절대 비중을 쏟았던 선택은 이제 부메랑이 돼 돌아올 판이다. 멕시코전을 준비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나흘. 상대는 한국보다 하루 더 회복하고 훈련할 시간이 있다. 무엇보다 멕시코의 전력이 범상치 않다. 1차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1대0으로 꺾었다. 놀라운 속도와 정확도를 갖춘 역습, 빠른 수비 전환은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꼬인 조건도 있다. F조 1강으로 평가받던 독일이 1차전을 놓친 것이다. 독일은 남은 2경기를 모두 잡겠다는 목표다. 조 2위가 되면 16강에서 또 다른 우승 후보 브라질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독일은 멕시코전에서 놓친 승점을 스웨덴·한국을 상대로 다 챙겨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1승1무1패로도 16강 가능성이 작다.
역대 월드컵에서 한국이 2차전에서 거둔 승점은 9경기에서 4점이다. 승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멕시코의 놀라운 경기력은 물론이고 기나긴 징크스도 깨야 하는 것이다. 많은 예상과 조언이 나온다. 멕시코의 빠른 역습을 의식해 스리백을 중심으로 스웨덴전보다 더 깊은 수비를 준비해야 한다. 스웨덴전에서 단 1개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한 에이스 손흥민(토트넘)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월드컵 전부터 감돌던 걱정과 우려·불안은 1차전 패배로 한층 커졌다. 스웨덴전 후 선수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멕시코전을 향한 각오를 밝혔다. 역대 월드컵 중 가장 험난한 도전을 해야 한다. 신 감독과 선수들은 솟아날 구멍을 만들 수 있을까. 한국이 단 1점의 승점도 가져오지 못한 월드컵은 1990이탈리아월드컵이 마지막이었다. 2차전도 패배하면 28년 만의 실패가 엄습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
※서울경제신문은 2018러시아월드컵 시즌을 맞아 서호정 축구칼럼니스트의 글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