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8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개막식에서 신정기(앞줄 왼쪽)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인력특별위원장과 김계원(〃오른쪽) 대한가구산업협동조합연합회장이 ‘최근 노동현안에 대한 중소기업계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제공=중기중앙회
중소기업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정상화를 반대하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 불참하고 있는 노동계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조속히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또한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해 탄력 근로시간제 단위 시간을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1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정상화, 근로시간 단축,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등 최근 노동현안에 대한 중소기업계 입장을 발표했다.
중소기업계는 성명을 통해 △노동계의 장외 투쟁 즉각 중단 및 최저임금위원회로의 조속한 복귀 △내년도 최저임금의 합리적 수준 결정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등을 한 목소리로 촉구했다.
박성택 중기중앙회장은 이날 출입기자와의 간담회에서 “국내 노조 조합원의 72.5%가 조합원수 1,0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에 소속돼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 근로자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노동계는 하루 속히 협상 테이블로 복귀해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가 관행이 된 노동시장 구조를 개혁할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최저임금 적용 근로자의 84.5%가 30인 미만의 영세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계를 대표해 성명서를 낭독한 신정기 중기중앙회 노동인력특별위원장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새로 꾸려진 만큼 지금은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에 기초한 노동시장 구조를 개혁할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한 치의 타협과 양보도 없이 협상의 장을 이탈하는 것은 책임 있는 경제 주체의 자세로 볼 수 없다”며 노동계를 압박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산업계 현안으로 떠오른 탄력 근로제 확대에 대해선 조속한 추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 회장은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최저임금법을 개정하고 당정청이 7월부터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의 속도 조절을 위해 6개월의 유예 기간을 갖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기존의 인력난에 추가 비용까지 떠안게 된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해 현행 2주(취업규칙), 3개월(노사합의)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각각 3개월과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위원장은 “중소기업계가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을 무조건 거부하는 게 아니다”며 “일본 바이어 얘기를 들어보면 노동문제를 다루는 공무원의 사고가 매우 유연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현장 상황을 살펴달라고 아무리 애원을 해도 들어주는 이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중소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근로시간 단축이 더 두렵다”며 “회사가 살아 남아야 직원들도 일할 자리가 있는 게 아니냐. 정부가 탄력 근로시간제 1년 확대만이라도 꼭 수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일본이나 일본,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법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면서 1년 단위 이내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병행 도입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만큼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저임금 미만율은 전산업(13.1%), 제조업(5.1%), 농업(42.8%), 도소매업(18.1%), 숙박서비스업(34.4%), 사업지원서비스업(19.5%) 등으로 생계형 자영업자의 지불 능력은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박 회장은 “그 동안 경제성장률에 비해 3배 이상 높았던 최저임금 인상률로 인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300만 명에 달하고 있고, 최저임금 지불주체인 생계형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은 한계에 이르렀다”면서 “경직된 고용구조 속에서 재취업조차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창업을 하게 된 영세 소상공인들은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으로 근근이 버티면서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이러한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최저임금의 높은 인상률을 고집한다면 취약한 근로자를 더욱 빈곤한 실업 계층으로 전락시킬 것이 자명한 만큼 소상공인의 현실과 업종별 영업이익을 고려해 최저임금의 구분 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중소기업인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어려워진 만큼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중장기적 관점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종업원수 550명 규모의 자동차부품업체 A사 김치형(가명) 대표는 “근로시간 단축 적용에 맞춰 3조 2교대를 편성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구직 공고를 냈지만 필요 인원의 절반도 못 채웠다”며 “고졸 생산직 초임이 3,500만원이 넘지만 와서 일하겠다는 젊은이가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중소제조업의 고질적인 인력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무조건 근로시간 단축에 맞춰 신규 인력을 뽑으라고 하는 것은 앞 뒤가 바뀐 처사”라고 꼬집었다. 식품가공업체 B사 이우직(가명) 대표는 “주 12시간의 근로 시간이 단축되면 생산량이 30% 이상 줄어 드는데 우리 회사만 해도 전년도 매출 100억원 중에서 30억원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셈”이라며 “지방에선 사람 구하기도 어려워 외국인 근로자로 버티고 있는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원 1인당 급여가 6,000만원으로 늘었다”고 한탄했다. 주물업체 C사 서민호(가명) 대표는 “같은 제조업이라도 주물이나 금형 등 부품업체들은 업황과 원청회사의 주문에 따라 생산 물량의 변동 폭이 심하다”면서 “지금이라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해 통해 산업 현장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