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는 당시로서는 백제의 국력을 모은 국가적 사업이었지만 임진왜란을 전후해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륵사에는 원래 세 개의 탑이 있었는데 이 중 서쪽 영역에 자리 잡은 미륵사지 석탑은 석재 2,800여개를 목탑처럼 짜 맞춰 목탑에서 석탑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석탑은 기단 폭 12.5m에 남아 있는 6층까지의 높이가 14.2m로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석탑으로 손꼽힌다. 18세기 조선 영조 때의 기행문 ‘와유록’ 등 문헌에서는 탑이 무너진 사연과 함께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돌을 얹으며 탑을 일으키기 위해 애썼다고 전하고 있다. 다만 동쪽 석탑은 발굴 당시 완전히 무너져 내려 석탑에 이용된 석재들이 주변에 흩어지고 일부는 외부로 유출돼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2009년 석탑 1층 해체조사를 진행하던 중 가장 아래쪽 심주석에서 금빛 찬란한 사리호를 비롯해 금판과 청동합 등의 유물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기록판에는 미륵사가 무왕 재위 때인 439년 왕후 사택적덕의 딸의 발원에 따라 건립된 것이라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이는 ‘삼국유사’에 적혀 있던 ‘서동요’ 이야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논란을 낳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이 20년간의 대수술을 거쳐 원형에 가깝게 복원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원래 9층의 장대한 석탑으로 추정되는 탑은 6층 일부만 남았고 그나마 무너진 부분은 1915년 일제가 콘크리트로 메우는 아픔을 겪었는데 이번에 첨단기술을 활용해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본래의 재료를 최대한 재사용하고 과학적 연구로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한다. 시대를 뛰어넘어 오뚝이처럼 부활한 미륵사지 석탑이 오래도록 우리 곁을 지켜주기를 소망해본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