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장착한 무기가 CVC(Corporate Venture Capital·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이다. 벤처육성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는 우리에겐 VC(Venture Capital·벤처캐피탈)만이 익숙하지만 미국, 유럽 등 글로벌 벤처강국에서는 기업이 인수합병의 주축이 되는 CVC 문화가 널리 정착돼 있다. 2016년 하버드 비즈니스 뷰에 따르면 2011년 1,068개였던 미국 내 CVC 조직은 5년 뒤인 2015년말 현재 1,501개로 늘어났고 2012~2015년 4년 간 CVC 투자액은 다섯배 증가한 약 750억달러를 기록했다.
사례도 숱하다. 구글은 지주회사 알파벳을 설립한 이후 아예 초기단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GV(Google Ventures), 후기단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GC(Google Capital) 등 단계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CVC를 따로 만들었다. 과거 안드로이드, 유투브 등 스타트업 인수를 통해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로 부상한 구글은 현재는 로봇, 무인항공기, 바이오, 무인자동차 등에 전략적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CVC의 존립근거 자체가 희박하다. 공정거래법 제8조는 일반 지주회사의 자회사는 금융업이나 보험업을 영위하는 손자회사를 보유할 수 없게 규정해놨다.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CVC를 앞세워 활발한 M&A에 나서는 서구와 달리 국내 지주회사는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CVC 설립 자체가 제한돼 있는 것.
이 같은 규제 탓에 국내 대기업들의 스타트업 육성 접근은 지주사법을 우회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특정부서의 팀 프로젝트, 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위한 독립법인 신설 등의 모양새다. 롯데그룹은 스타트업 보육·투자법인으로 롯데엑셀러레이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회사는 신동빈 회장(19.99%), 롯데지주·롯데케미칼·호텔롯데·롯데닷컴(각각 9.9%) 등이 출자해 만들었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한국적 벤처생태계의 특성상 벤처·창업기업의 선순환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역할이 절실하지만 현재 법령상 대기업의 벤처기업 인수는 현실적 제약이 크다”며 “대기업의 창업·벤처기업에 대한 초기투자와 이후 단계의 M&A 활성화를 위해서는 과감한 출자규제 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해욱기자 spook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