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운용은 순수하게 투자 대상 기업의 가치와 장기적 운용계획에 따라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꾸 기금 운용에 변수를 두면 제대로 된 운용이 불가능해요.”
국민연금공단이 향후 기금 투자에 있어 기업의 ‘인권경영 실적’까지 평가 기준으로 고려한다고 전해진 22일 한 국내 대형 연기금의 고위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국민연금이 ‘국민’의 자금을 모아 운영된다는 공적 성격을 악용해 621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무기로 기업에 새로운 준조세를 부과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2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연 인권경영포럼에서 박정배 국민연금 기획이사는 “기금을 투자할 때 기업의 인권 관련 정보를 수집해 평가항목으로 고려할 것”이라며 “인권 문제가 발생했을 때 투자 대상 기업이 대응방안을 마련해 뒀는지도 고려 대상”이라고 밝혔다.
인권위가 공공기관에 시범적용할 ‘체크리스트’는 이미 다른 법적 근거 등으로 규제하고 있는 부분이나 해당 기업이 통제하기 힘든 상황이 대부분이다. 10개 항목 중 △산업안전 보장 △아동·소비자 인권 보호와 같은 내용은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소비자보호법 등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다. 또 책임 있는 공급망 관리의 경우 협력업체의 인권경영 상황까지 챙겨야 한다는 내용은 해당 기업의 통제영역을 벗어난다. ‘기업 인권 연좌제’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수백개의 협력사를 대상으로 설문이나 현장방문을 통해 공급업자·자회사 등 주요 협력회사의 인권 보호 실태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또 다른 비용의 강요”라고 설명했다.
회사 임직원, 노동조합, 협력업체 공급망과 지역주민·소비자로 구성된 인권경영위원회에 의한 인권경영 실태평가 역시 사측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국민연금을 이용해 기업들을 압박하겠다는 논리는 우려했던 연금사회주의를 점차 현실화하려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국민연금이 기금 운용에 각종 외부변수를 고려하게 되면 결국 기금 수익성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 한 재계 고위관계자는 “스튜어드십 강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독립적 운용을 하지 못하면 결국 손해는 연금을 내고 있는 국민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말했다.
/강도원·신다은기자 theo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