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김판석 인사혁신처장 "위법지시 거부할 법적근거 마련... '변양호신드롬' 사라질 것"

어쩔 수 없이 지시 따랐어도 거부기록 있으면 차후 구제 가능
9급도 능력 있으면 빨리 승진하는 '패스트트랙' 방안 곧 마련
2022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 10%까지 올리는게 목표

김판석 인사혁신처장 /송은석기자

“과거 정부들은 X축에 정치 발전, Y축에 경제발전을 놓고 국가를 운영했습니다만 이제는 Z축에서 새로운 차원의 사회 발전을 입체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제가 보는 사회 발전의 핵심은 사회적 형평성과 차별 없는 공정성입니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구축하고 차별 없는 균형인사를 구현하는 것을 인사혁신처의 최우선과제로 삼은 이유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정통 관료 출신이 아닌 학자 출신의 김판석 인사혁신처장을 공직 인사의 첫 사령탑으로 세웠다.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국정농단과 촛불혁명에서 태어난 정부인 만큼 정부혁신과 인사개혁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은 여전히 크다. 이에 김 처장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내걸고 1년을 달려왔다. 경직된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속진임용제’와 공무원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 또한 추진해왔다. 오는 7월 취임 1주년을 맞는 김 처장을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 처장은 취임 1주년의 대표적인 성과로 ‘공무원재해보상법’을 꼽았다. 제한적이었던 공무상 재해 범위를 넓히고 이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 합당한 보상을 한다는 게 골자다. 김 처장은 “국민안전 분야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최선을 다해 헌신하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재해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게 재해보상법에 담긴 정신”이라며 “특히 공무로 인해 사망하거나 재해를 당한 비정규직 공무원들도 순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법적 제도가 마련돼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기여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위법·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국가공무원법에 이를 명시하고 어쩔 수 없이 지시를 따랐다가 나중에 불이익을 받게 되더라도 거부했다는 기록이 있을 때는 구제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적폐청산’을 이유로 과거 정권의 공무원들이 비난을 받거나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사후 결과를 가지고 평가받는 ‘변양호 신드롬’은 이러한 제도를 통해 막을 수 있다는 게 김 처장의 생각이다.

현실적으로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김 처장은 “정권을 위임받은 선출직 공무원과 공직사회에 긴장관계가 있는 것”이라며 “장관이나 총리·대통령 등이 만에 하나 국가 발전에 도움되지 않는 행동을 하면 고위공무원은 중심을 잡고 분명한 자기 의사를 개진하라는 메시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인사혁신처장 김판석 인터뷰./송은석기자

공직사회 내 성 평등 또한 김 처장이 중시하는 가치다. 최근 인사처는 국가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50%를 넘어섰다고 잠정 집계치를 내놓았다. 지난 2017년 발표된 연보에 따르면 국가공무원 65만149명 중 여성 비율은 49.8%(32만3,575명)였으나 올해에는 50.2%로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이 6.5%에 불과하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됐다.

2022년까지 고위공무원단의 여성 비율을 10%까지 높이는 것이 인사처의 목표다. 김 처장은 “여성가족부와 행정안전부·국무조정실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여성 공무원들의 숫자뿐 아니라 대표성과 활동에도 지장이 없도록 승진·배치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라며 “인사처만 해도 과장급 여성 공무원이 30% 정도 되는 등 대부분 허리가 튼튼하게 돼 있지만 부처 특성상 여성 관리자가 적은 부처는 외부 임용이나 개방직·인사교류 등을 통해 정책적으로 독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사처는 경직된 관료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속진임용제’ 또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고위공무원단에 들어가는 비율은 5급 공채가 75.1%에 달한 데 비해 7급 공채는 4.6%, 9급 공채는 1.6%에 불과하다. 9급에서 5급으로 올라가는 데는 평균 25년4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능력이 있으면 출신 공채와 관계없이 빠른 승진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속진임용제의 취지다.

속진임용제의 핵심은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승진임용 방식을 마련하는 것이다. 김 처장은 “현재 승진임용 방식에 대한 각 부처의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며 “9급도 빨리 승진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방안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장급 후보자의 경우 롤플레이·그룹토론·인바스켓훈련 등을 통해 역량을 평가한다”면서 “이때 평가위원 대부분이 평가에 대한 컨센서스를 이룰 정도로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정책 중 하나인 노동시간 단축 또한 공직사회의 효율성을 필요로 한다. 공무원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아닌 국가공무원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공무원은 노동시간 단축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김 처장은 “무한책임을 지는 정부 입장에서는 민간이 주 52시간 노동을 시행한다면 같은 방향으로 유연근무제나 탄력근무제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최근 초과근무시간을 줄여 2022년까지 4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 처장은 “일차적으로 공무원 전체도 52시간 집중근무제를 시행해 근무할 때 하고 쉴 때 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이미 9시보다 빨리 출근해 6시보다 빨리 퇴근하는 방식이나,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도 일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센터’ 등이 제도화돼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인사처는 청사에 ‘근로시간 현황판’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근로시간과 연차 사용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김 처장은 “저희가 이런 것을 하고 있는데 다른 분들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참조하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인사처는 공무원들이 순환보직으로 인해 전문성을 기르기 쉽지 않다는 오랜 문제 또한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김 처장은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 또다시 본부장으로 돌아와 했던 말을 상기했다. 김 본부장이 “과거 본부장 할 때 같이 근무한 인력이 있을 줄 알고 들어왔는데 (많은 이들이) 가고 없어서 힘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김 처장은 “순환보직은 범조직적 시야를 갖게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통상 분야의 경우 오랫동안 전문성을 축적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며 “환경 분야에서도 미세먼지 등에 있어 동북아 협력을 하려면 전문성이 필요하고 구제역 등 농림·축산 분야, 메르스 등 보건·복지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이에 따라 6개 분야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해온 전문직공무원제도를 대폭 확대한다는 게 인사처의 계획이다.

올해 들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있다. 40여명의 주무과장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교육연수를 받게 하는 ‘남북협력리더과정’이 그것이다. 경제부처와 비경제부처의 간부를 나눠서 6월과 7월에 각각 파견할 계획이다. 김 처장은 “슈테판 아우어 주한 독일대사는 동독이 사회주의 개념에 물들어 있어 법치주의를 심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하더라”면서 “동독의 교육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고 그때 서독 공무원들이 많이 가서 도왔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개혁·개방 이후 정상국가로 나아가면서 국가공무원법을 제정할 경우 인사처가 도울 준비도 돼 있다는 게 김 처장의 설명이다. 김 처장은 “중국이 2005년에, 베트남이 2008년에 공무원법을 제정했는데 북한도 사회주의체제하에서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무원법 제정이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며 “우리 공무원법이 북한에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나중에 도움을 청하면 즉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의욕을 드러냈다.

최근 인사처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비교행정연구회를 만들어 법제를 연구하고 있다. 김 처장은 “사무관과 주무관 등 젊은 공무원들이 중심이 돼서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이 친구들과 한 번 산행을 같이하면서 얘기를 들어봤는데 상당히 의욕적이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대담=서정명 정치부장 vicsjm@sedaily.com /정리=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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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경남 창원 △부산 동아고 △중앙대 행정학과 △미국 플로리다국제대 행정학 석사 △미국 아메리칸대 행정학 박사 △1999~2000 한국인사행정학회 회장 △2003~2004 대통령비서실 인사제도비서관 △2012~2014 연세대 정경대학 학장 겸 정경대학원장 △2017년~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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