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지난 22일(현지시간)부터 28억유로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장벽을 걷지 않으면 EU에서 수입되는 모든 자동차에 2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거듭 경고하고 나섰다. EU가 관세 철회는커녕 미국의 자동차 관세 강행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자동차 관세 전쟁이 현실로 다가오자 독일은 물론 일본 등 각국 자동차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EU가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장벽을 제거하지 않으면 EU에서 수입되는 모든 자동차에 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유럽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 내에서 차를 생산하라고도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미 상무부에 수입차와 차량 부품이 미국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수입차가 국가안보를 저해한다고 판단되면 최고 25%의 관세가 부과된다. 현재 미국이 수입차에 매기는 관세는 픽업트럭(25%)을 제외하면 2.5% 수준이다. 반면 유럽은 수입차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EU는 즉각 보복 의사를 나타내며 또 한 번의 정면충돌을 예고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칙을 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이 유럽 경제의 핵심인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독일을 중심으로 무역수지에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한 EU의 보복 수위는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EU 차원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관세율까지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EU 자동차 업계의 압박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U 보고서에 따르면 EU의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에 관세가 매겨질 경우 무역피해가 3,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미국의 자동차 관세 폭탄은 EU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이 EU의 최대 자동차 수출시장이며 2016년 현재 자동차 수출액 480억유로의 25%를 미국이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자동차제조업협회(ACEA)도 EU와 미국의 자동차 관련 무역은 두 지역 간 총 거래량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고 밝혔다.
특히 EU 국가 중 자동차 수출 1위국으로 최대의 피해가 예상되는 독일 자동차 업계의 위기감이 크다. 이날 BMW 주가가 1.5% 하락하는 등 독일 자동차 업체들의 주가는 대부분 하락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독일 IFO경제연구소를 인용해 “미국이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독일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의 0.2%에 가까운 약 60억달러 규모의 타격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포르쉐는 성명을 통해 “매출의 3분의1이 북미 지역에서 발생하는데다 현지 생산 공장을 두지 않아 이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미국 내의 논의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폭스바겐 대변인도 “관세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높은 비용부담을 초래하고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며 “(무역보복은) 모든 국가의 경제성장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고율 관세 부과 발언으로 미국 시장 점유율이 40%에 달하는 일본 자동차 업계도 불안감에 휩싸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EU를 겨냥한 것이지만 결국 수입차 전체로 제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다이와종합연구소는 미국이 자동차 관세를 크게 올리면 승용차와 부품을 포함해 일본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관세는 연간 2조2,000억엔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지난해 미국 현지생산이 377만대에 이르고 9만명을 현지 고용했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미국 의회와 관련부처·언론에 배포하는 등 홍보를 강화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가 얼마나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