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월급 2배론’과 소득역행성장

김영필 경제부 차장


지금으로부터 59년 전인 지난 1959년 일본에서 ‘월급 2배론’ 논란이 있었다. 일본판 소득주도성장이랄까. 경제학자 쓰루 시게토는 정부의 월급 2배론은 이론적 근거가 미약하며 실현하기 어렵고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케다 하야토 당시 통상산업성 장관은 이를 “어설픈 탐색”이라고 깎아내렸다.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그는 월급 2배론을 설명할 때 “경제 규모를 확대하고 총생산을 증가시키면서 소득 격차를 축소해야 한다”고 했다. 월급 2배론의 바탕에 ‘성장’이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성장이 중요한 것은 일자리 때문이다. 장사가 잘돼야 사람을 뽑듯 경제가 커져야 일자리가 많아진다. 일자리가 풍족해지면 급여는 올라가고 국민들의 소득이 불어난다. 수요공급의 원리다. 이 같은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혁신이다.

문재인 정부를 보고 있으면 월급 2배론의 성장 의지도 일자리의 중요성도 찾기 힘들다. 물론 최저임금은 꼭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월급 157만원이 많지는 않다. 소득주도성장도 뜻은 좋다.


하지만 청와대가 얘기하는 소득주도성장에는 ‘성장’이 빠져 있다. 성장정책이 없으니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가 없으니 소득이 줄어든다. 올 1·4분기 하위 20% 가구소득이 전년보다 8% 감소한 것이 증거다. 단순히 임금만 올려 성장한다는 꿈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의 아집이다. 지난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도소매업과 음식점업의 고용 둔화는 최저임금 인상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갈 것”이란다.

가난한 이들은 쉴 수가 없다. 정부의 경제실험으로 일자리에서 밀려난 저소득층은 생존의 문제에 부딪힌다. ‘노동의 배신’을 쓴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이렇게 적었다.

“가난을 직접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빈곤을 어렵지만 어찌어찌해서 넘어갈 수 있는, 생존 자체는 위협받지 않는 상태로 이해한다.…(중략)…오늘 하루 일을 못 하면 당장 내일 식료품 살 돈조차 없는 절박함을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반지하 월세방의 눅눅함은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 지원도 좋지만 사람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지난달에만 임시·일용직 취업자가 전년보다 23만9,000명 줄었다. 참여정부 때 노동연구원 원장을 지낸 최영기 한림대 교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생산성이 낮은 취약계층 근로자와 자영업자를 구조조정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소득주도성장의 가장 큰 맹점은 기업의 부담이 아니라 하루하루 일이 필요한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효과가 90%” “최저임금 영향 진짜 모른다” 같은 말은 가족의 삶을 홀로 짊어진 이들에게 모욕이다. 이념실험, 이쯤이면 됐다.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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