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한미 간 금리 역전과 미중 무역전쟁 등 ‘이중고(二重苦)’가 겹치면서 펀드자금이 현금을 확보하거나 안전자산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금리 상승기에는 채권형펀드에 환매가 늘어나는 공식을 깨고 주식형에서 돈이 빠져 채권형으로 들어가고 있다. 금리상승에 대한 리스크가 커지고 있지만 이보다는 손실을 최소화시키겠다는 심리가 더 커진 것이다. 주식시장이 출렁거리며 불안감이 고조되자 갈 곳 잃은 1조8,000억원이 초단기채권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일부 펀드 자금은 환매해 현금으로 증시 주변에 머물고 있다. 현금 확보도 조정장에서 적합한 투자전략이다.
2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에서 미국 시장으로 2,000억원에 가까운 1,941억원이 들어갔다. 같은 기간 6,249억원이 몰려 단일 시장으로는 베트남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자금을 쓸어담았다. 이와 달리 올 들어 신흥국에서는 중국 1,599억원을 비롯해 브릭스펀드에서 1,449억원이 빠져 이 자금이 거의 미국으로 흘러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흥국이 미국 금리 인상이라는 리스크에 노출되며 신흥국과 미국의 자금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흥시장에서는 신흥국의 자존심이었던 베트남 펀드 수익률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자금 쓰나미가 이어지고 있는 반면 미국은 추가 금리 인상 기대에 자금 안전 투자처로 꼽히며 자금 블랙홀이 되고 있다. 신흥국은 미국의 올해 금리 인상이 4회로 거의 확정된데다 유럽중앙은행을 포함한 선진 중앙은행의 긴축 파장, ‘주요2개국(G2)’ 무역전쟁의 파장을 직격탄으로 맞고 있다. 여기에 1997년 IMF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경제위기 10년 주기설’까지 겹치면서 지역별 투자 중 미국 시장만이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자금이 모이다 보니 펀드 수익률 역시 북미펀드의 경우 연초 이후 5.94%의 수익률을 보였다. 특히 한국 자금에 대한 러브콜이 이어지며 신흥시장 절대 강자인 베트남펀드 수익률이 같은 기간 -2.84%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중남미(-11.17%), 브라질(-10.61%)도 모두 10% 이상의 손실을 기록했고 중국 역시 -1.56%로 마이너스에 머물렀다.
또 주식시장이 부진을 보이면서 금리 상승기임에도 불구하고 주식형펀드 대신 채권형펀드로 자금이 모이고 있다. 금리 상승 시기에는 금리가 오른 만큼 역으로 채권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채권 매도가 유리하지만 주식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그래도 주식보다는 채권 등 안전자산 선호가 더 우세한 모습이다. 올 들어 액티브주식전체·액티브주식일반·액티브주식테마 펀드에는 각각 3,157억원·3,730억원·3,938억원 등 총 1조원 이상이 빠져나갔다. 그나마 주식형에서 자금이 몰린 것은 중소형(3,294억원)펀드가 유일했다.
반면 주식시장 등의 침체가 더해지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초단기채권에 쌓이고 있다. 머니마켓펀드(MMF)에는 연초 이후 31조8,711억원이 쌓여 지난 1년간 10조원이 빠져 나간 것과 완전한 대조를 이뤘다. 또 6개월 미만의 초단기자금 피난처인 초단기채권에도 1조8,000억원이 몰렸다. 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금리 인상으로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는 확대된데다 부동산 규제로 부동산으로 몰리던 자금마저 차단되면서 자산가들도 투자를 보류하며 단기채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면서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불안을 느끼고 자금을 빼서 단기 투자처에 넣어두고 관망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펀드테마에서도 안전지향 성향은 두드러진다. 올 초까지만 해도 자금 블랙홀이 됐던 헬스케어펀드·삼성그룹주펀드에서 2,149억원·9,870억원이 빠져 부동산펀드와 북미금융펀드로 몰리는 모습이다. 경기침체기에 자금이 몰리는 부동산펀드에는 연초 이후 2,043억원이 들어왔다. 대형 부동산을 보유한 펀드는 가격 하락에도 ‘버티면 회복한다’는 전략이 통해 투자 시계가 불투명할수록 자금이 모인다. 또 국내 금융펀드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갔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서 해외 금융펀드에는 올 초 이후 819억원이 몰렸다. 운용업계의 한 펀드매니저는 “미중 무역전쟁과 신흥국 발작 위기 등으로 투자자들이 가장 꺼리는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투자자들이 수익률을 조금 낮추더라도 가장 보수적인 투자처로 자금을 옮겨놓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