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풍년이 들어 황금 들녘을 이뤄야 백성이 굶지 않을 텐데 참으로 걱정이구나.”
1418년 집권 이후 홍익인간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국조인 단군의 사당을 정비한 세종대왕은 맹자의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할 수 없음)’을 되뇌인다. 세종은 ‘굶어 죽지 않고 병이 나면 치료도 해보고 외적에게도 침탈당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당시 시대정신을 과학기술 문명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여기에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것’에도 중점을 뒀다. 그가 평생 추구한 과학기술 드라이브는 결국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여민(與民)’의 과정이었다.
◇농사직설, 민본주의 꿰뚫어=‘세종실록’을 보면 ‘흉년과 기근으로 백성들이 굶고 있어 도별로 양곡을 풀어 구휼했다’는 표현이 종종 눈에 띈다. 그만큼 먹고사는 게 시급한 과제였다. 우리 땅에 맞는 과학영농은 세종의 필생 과업이었다. 그 결과 날씨와 땅, 종자 보관과 뿌리기, 모내기, 김매기, 물 대기, 거름주기 등이 자세히 적힌 ‘농사직설’을 편찬해 널리 배포했다. 경복궁 후원에 직접 1결(약 4,000㎡)의 땅을 갈아 유효성도 검증했다. 중국의 ‘농상집요’를 참고하던 때에 비해서는 당연히 소출이 늘 수밖에 없었다. 이앙법 등까지 적극 보급하며 농업 생산력이 급증했다. “나라는 백성으로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데 농사는 먹고 입는 것의 근원이다”라고 한 민본주의(民本主義)의 실현이었다.
신동원 전북대 한국과학기술문명학연구소장은 “세종은 과학기술이 통치체계·군사·경제·복지·문화를 관통하는 기반임을 확신했다”며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시대에는 이 같은 통찰력을 가진 리더십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측우기·천문역법, 600년 전 빅데이터=4차 산업혁명도 결국 빅데이터 싸움이다. 세종은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선 1441년에 ‘측우기’를 내놓고 “눈금을 새겨 빗물의 깊고 얕은 치수를 살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꼼꼼히 빅데이터를 구축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기상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을 핵심으로 한 공법(貢法)을 ‘세계 최초 여론조사(17만명 응답)’ 로 결정해 단계별로 적용한 것도 모두 백성을 위한 일이었다. 그전에는 토지를 세 등급으로 나눠 관원이 수확량을 보고 세 감면 여부를 결정(답험손실법)해 기득권층에 유리했다.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역법(曆法)’으로 평가되는 ‘칠정산 내외편’은 24절기와 일식·월식 등을 예보해 농사에 도움을 준 천문역법이었다. 집권 후 시간이 흐를수록 ‘위도와 경도가 다른데 중국이나 아라비아 역법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세종의 문제의식이 결국 탁월한 역법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를 위해 혼천의·간의 등 천문관측기구를 제작하고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앙부일구·자격루 등도 발명했다. 자격루는 오늘날에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만 재현했을 뿐 실제 만드는 데 애로를 겪을 정도다. 송혜경 ‘한국의 정신과 문화 알리기’ 상임이사는 “외국 전문가에게 세종의 과학기술 업적을 소개하면 감탄을 금치 못한다”며 “과학기술 리더십과 혁신·도전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체적 시대정신, 의학·무기 발전 견인=당시에는 병명도 모른 채 숨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세종대왕이 1443년에 의원들이 우리 산천에서 나오는 천연물로 처방할 수 있게 ‘향약집성방’과 의약학서인 ‘의방유취’를 펴내 보급하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동의보감’으로 이어졌고 현대 바이오 신약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김호철 경희대 한의대 교수는 “세종은 국내 야생약초 700여종을 조사해 우리말로 약명과 효능·용량·복용법을 기재한 ‘향약본초’를 펴냈다”며 “수록된 생약은 오늘날 차세대 의약품 시장의 주류로 부상하는 천연물 신약의 모태이자 한의학의 근간”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이 무려 3㎞나 날아간 다연발로켓인 ‘신기전’을 발명해 국방과학을 실천한 것도 애민정신의 발로였다.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은 한문을 모르던 백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학적으로 자음·모음 28자로 인간이 발음할 수 있는 대부분의 소리를 표현했다. 서양에서 금속활자를 발명해 인쇄술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440년)보다 한참 앞서 1420년 경자자, 1434년 갑인자라는 수준 높은 금속활자를 발명해 인쇄술을 발전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문수 숭실대 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세종의 혁신 리더십과 과학중심 DNA가 사후 50년도 안 돼 사그라지면서 나라가 정체되기 시작했다”며 “다시 한번 과학기술 국가의 비전을 세우고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격적 과학인재 등용…국가 통째로 업그레이드=세종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보다 2~3세대 앞선 과학기술 혁신리더로 국가를 통째로 업그레이드한 인물이었다. 황희·최윤덕 등 경륜 있는 대신과 신진 집현전(集賢殿) 학자 등의 보좌를 받으며 이순지(칠정산 내외편), 이천(혼천의·앙부일구·갑인자), 정인지(농사직설), 장영실(자격루·옥루) 등 최고의 과학인재를 두루 등용했다. 기술과 능력만 있으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기용해 과학기술 발전에 매진하도록 했다.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출신인 임대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기혁신본부장은 “세종대왕을 본받아 4차 산업혁명의 리딩 국가가 돼야 한다”며 “정부는 과학기술 리더십을 발휘하고 과학기술계도 연구를 위한 연구에서 벗어나 미세먼지·녹조·교통 등 사회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도전하고 자기 희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