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의 숙원인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갈수록 멀어지면서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금융권 혁신을 자극하는 ‘메기’는커녕 ‘피라미’로 전락할 위기다. 금융당국이 인터넷은행 활성화를 위한 핵심 규제인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데 앞장서야 하지만 국회 핑계만 대고 강 건너 불구경하면서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출범 초기의 경쟁력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27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릴 예정이었던 규제혁신점검회의에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방안’을 보고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낙연 국무총리가 콘텐츠 부실을 문제 삼아 회의를 전격 취소하면서 막판에 취소됐다. 보고할 내용에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필요성과 이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은 지금까지 금융위가 되풀이해온 레퍼토리다. 특이한 방안은 없고 법안 통과가 늦어지고 있어 국회를 설득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금융위 내부에서는 추가적인 혁신방안이 뭐가 없는지 고민하느라 긴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인터넷은행은 핀테크 등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금융권을 자극하기 위한 메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됐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시절 일부 반대와 관련법을 적극 해석해 출범을 승인, 벌써 출범 1년을 넘고 있다. 하지만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를 제한한 은산분리 규제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인터넷은행에 문제가 생겼다. 특히 케이뱅크는 대주주의 증자 여력이 제한되면서 증자 때마다 난항을 겪고 있다. 5,000억원의 증자를 목표로 해도 1,500억원 정도만 겨우 맞출 정도다. 중금리 대출 등 공격 영업을 위해서는 실탄(자본)이 필요한데 증자가 막히다 보니 케이뱅크는 직장인 신용대출 등을 지난해에 이어 다시 중단하는 등 영업에 지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인터넷은행 초기에 긴장하던 은행이나 카드, 캐피털사 등은 수수료 인하 경쟁은 고사하고 ‘인터넷은행이 별 게 아니다’라며 다시 느긋해지고 있다. 인터넷은행이 출범하면서 대출 금리는 내리고 예금 금리는 올리면서 은행들이 일제히 따라 하며 경쟁에 돌입했지만 이제는 이런 경쟁이 통하지 않고 있다. 한 캐피털 대표는 사석에서 “인터넷은행이 증자를 맘대로 하고 계속해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다면 지금쯤 아마 회사를 접어야 했을 수도 있는데 오히려 은산분리 규제 때문에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맥을 못 추면서 우리에게는 다행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은산분리 규제에 갇힌 인터넷은행이 기대했던 혁신을 추동하지 못하면서 메기가 아닌 피라미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집권 여당 의원 일부가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인터넷은행에 특혜를 줄 수 있다며 완강하게 반대하면서 관련 상임위에서 진전을 보지 못해서다. 더구나 케이뱅크의 경우 특혜승인 시비에 휘말리면서 인터넷은행들이 국회를 상대로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도 없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을 활성화하면 고객유치나 대출 금리, 수수료 인하 경쟁이 불가피하다”며 “규제에 발목이 잡히면서 당국이 승인했던 취지가 많이 퇴색됐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금융당국이 집권 여당 의원이 반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눈치를 보면서 적극적인 설득 작업에 나서지 않은 것도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스타일이 정면 돌파보다는 우회법을 택하다 보니 실무자들도 굳이 여론이나 국회 등을 상대로 어렵게 규제 완화 필요성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회에는 은산분리 완화 관련 법안이 5개 계류돼 있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 다수의 반대로 통과에 난항을 겪고 있다. 현행법상으로는 케이뱅크의 주요 주주인 KT나 카카오뱅크의 주요 주주인 카카오는 의결권이 있는 지분을 4%, 전체 10% 지분만 허용하고 있지만 인터넷은행의 경우 이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