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은 현실과 가상의 융합이다. 융합으로 가는 길에는 기술과 욕망이라는 두 개의 계곡이 있다. 과연 기술과 욕망의 융합 중 어느 쪽이 더 험난할까 질문해본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국민은 현실의 소유욕망과 가상의 공유욕망 간 갈등 조정이 더 어렵다는 데 한 표를 던진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보다 제도의 혁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제도혁명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이해집단 간의 갈등 조정이 쉬울 수 없다. 역대 정권마다 규제개혁을 부르짖었으나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법으로 허용된 것 이외에는 불허하는 포지티브 대륙법 체계 국가의 숙명이기도 하다. 과연 대한민국의 규제개혁은 누가 이끌어 갈 것인가.
중앙정부 차원의 강력한 규제개혁은 지극히 당연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데 양대 걸림돌인 개인정보와 클라우드 규제는 중앙정부에 책임지고 돌파해야 할 책임이 있다. 현재의 데이터쇄국주의는 19세기 조선의 추락 같은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의 변곡점이 오는 2025년으로 다가온다는 예측에 많은 글로벌 기관들이 동조하고 있다. 현 정부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지금이 바로 국가 미래의 골든타임이다.
중앙정부 중심의 국가개혁에는 한계가 있다. 중앙정부는 독점적 권한을 향유한다. 독점조직은 내부지향적 권력화를 조직의 철칙으로 삼는다. 각종 규제는 공무원 권력의 원천인데 스스로 내려놓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다. 여기에 기존 제도에 편승하는 이해집단이 개혁의 크나큰 저항세력이 돼 국회와 행정부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결국 대통령의 규제개혁 지시에서 핵심규제는 빼고 자투리 규제 몇 개 푸는 형식적 대응을 한 결과가 역대 정권마다 이어졌다. 그런데 개별 부처의 규제개혁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도 없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스마트 규제 영향평가 시스템 구축이 절실한 이유다.
결국 중앙정부에만 제도개혁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일본·프랑스 등 중앙집권적 국가들이 21세기를 전후해 일괄이양법 등으로 과감히 중앙정부의 제도권한들을 지방정부로 이양한 이유다. 기업과 주민에 관한 규제권한을 지방정부에 이양하고 중앙정부는 공정한 룰을 만들어 심판을 보라는 것이 유럽연합(EU)과 개별국가 간 ‘보충성의 원칙’이 갖는 의미다. 예를 들어 지방정부들이 중소벤처기업 유치와 육성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 규제를 풀어 친기업 정책을 쓰는 지역으로 기업들이 몰려갈 것이다. 지역은 발전하고 일자리는 창출되고 주민 소득은 증대될 것이다. 지방정부 스스로 규제를 개혁해야 하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제공된다.
문제는 지방정부의 재정자립이다. 2000년 이후 재정자립도는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방정부는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 등 중앙정부의 해바라기가 돼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간 자율경쟁이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더 많은 지원을 받아내는 경쟁구도다. 지자체 간의 자율경쟁이 사라져 심지어는 지자체 간의 정책경쟁 포럼도 자리 잡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푸는 열쇠가 중소기업 법인세의 지방세화다. 스웨덴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지방정부는 상위 5%를 제외한 기업의 법인세를 받은 뒤 자율과 경쟁을 통해 지역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로써 기업과 지역과 주민의 선순환 발전이 가능해진다. 단 지역 간 격차는 대기업 법인세로 조정 가능하다.
그러나 특정 고교 출신들이 독식하는 지역 결탁을 막는 투명행정 구현이 전제조건이다. 중앙정부가 바라보는 지방정부는 불투명과 낭비의 조직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블록체인 기술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각종 지방세 징수와 복지 분배, 여론 수렴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추진할 수 있다면 시민 참여의 숙의민주제를 이룰 길이 열린다. 4차 산업혁명은 제도혁명이고 이는 중앙정부와 함께 지방정부가 주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