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짓는 음식·숙박업소..."저녁 있는 삶?, 저녁 장사 망칠 판"

[근로시간 단축 내달 시행]
7월 예약도 한 두건 불과
김영란법 때보다 더 심각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쳐
폐업 100만명 넘을수도


“20년 가까이 식당을 하고 있지만 요즘 같은 불황은 처음이에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김영란법이 시행됐던 때보다 훨씬 힘들어요. 당장 다음 달부터 근로시간 단축으로 직장인 회식 손님들까지 줄어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에요.”


마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최형순(가명)씨는 29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을 만나자 폭포수처럼 신세 한탄을 쏟아냈다. 오피스 밀집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평일 저녁 장사가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지만 오는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에 들어가면서 저녁 예약이 뚝 끊긴 것이다. 최씨가 기자에게 내민 예약 장부에서도 7월 예약은 한 두 건이 눈에 띌 뿐 평일 저녁 시간대는 거의 비어 있는 상태였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 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에 들어가면서 음식업 및 숙박 등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친목 도모를 위한 회식이나 워크숍(회의시간 제외) 등이 근로시간에서 제외되면서 주요 기업들이 단체 회식을 줄인 데 따른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뜩이나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매출 감소까지 확실시되자 자영업자들은 폐업의 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과세당국에 폐업을 신고한 개인·법인 사업자는 총 90만9,202명이었다. 업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폐업이 크게 늘면서 올해 1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음식이나 소매업뿐만 아니라 펜션 등 연수 및 숙박시설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경기도 용인의 A인력개발원 관계자는 “올해는 경기 악화로 예약률이 지난해에 비해 3분의1 이상 줄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이 본격화되는 7월에는 지난해 7월 대비 60% 수준의 예약률에 그치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건비 부담이 높아져 직원들을 줄이는 마당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엉뚱하게 워크숍까지 영향을 받으면서 올 하반기에는 파리만 날리게 생겼다”며 울상을 지었다.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근로자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이들은 대기업에서 용역·하청을 받는 구조여서 원·하청 불공정 거래 등을 해소하면 수익이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등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보완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정부가 파악하지 못하는 (근로시간 단축 부작용도 많지만) 실태를 파악해 주 52시간 근로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민정·박해욱·이종혁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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