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 소속이면서 상속·증여세법상 세제 혜택을 받는 공익법인 165곳의 운영실태를 조사·분석한 결과를 1일 발표했다. 공정위가 대기업 공익법인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이후 재벌 소속 공익법인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며 전수 조사를 예고한 뒤 실시됐다.
공정위 조사 결과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은 보유 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21.8%(2016년말 기준)로 전체 공익법인(5.5%)의 4배에 달할 만큼 월등히 높았다. 이 중 74.1%는 계열사 주식이었다. 이렇게 주식을 비교적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도 수익원으로서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열사 주식 배당금이 전체 법인 수입에 기여하는 비중은 1.06%에 불과했다. 수익률로 환산하면 평균 장부가액 대비 2.6%에 그친다.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대기업 공익법인은 모두 66곳(40%)으로 총 119개 계열사 주식을 갖고 있었다. 주로 자산 1조원 이상 대형회사(68.1%)나 상장사(63.9%)가 대부분으로 총수일가의 경영권이나 지배력 확대에 유리한 곳이었다. 특히 이 중 57곳(47.9%)은 총수 2세도 지분을 보유한 회사였다.
대기업 공익법인은 주식을 보유한 119개 계열사 중 112개(94.1%) 주식에 대해 상증세 면제 혜택을 받았다. 또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때 모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익법인이 총수일가 우호지분으로서 편법적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이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대기업 공익법인과 계열사·총수일가 간 내부 거래도 상당한 규모로 나타났다. 계열사나 총수 친족 등과 주식·부동산·용역 등 내부 거래를 한 곳이 전체 165개 공익법인 중 100곳(60.6%)이었다. 그럼에도 공익법인과 총수일가 간 내부거래에 대한 통제장치는 사실상 없는 상태다. 현재 공익법인-계열사 간 대규모 내부거래는 계열사 쪽에서만 이사회 의결·공시 의무를 진다. 동일인이나 친족과의 거래는 양쪽 모두 공시 의무가 없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올 하반기 국회에 제출할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에 대기업 공익법인 규제 방안을 담을 계획이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국내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공익법인의 내부거래 공시 의무를 강화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더 나아가 “공익법인이 계열사 주식을 매입하거나 계열사와 거래하는 행위도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공익법인이 공익증진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서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공익법인이 기부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도 있어 양 측면을 고려해서 적절한 제도를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오는 6일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 토론회에서 공익법인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