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한국 자동차 산업은 태동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성기였던 지난 2010년대 초반 대비 생산량은 10% 넘게 줄었고 수출은 20% 가까이 빠졌다. 반면 수입차는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주위 환경은 그야말로 온통 가시밭이다. 인건비는 연봉 1억원에 달할 정도로 수직 상승한 반면 해외 명차와 겨룰 전략차종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정부는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관세 폭탄 카드를 꺼낼 태세다. 노조의 극한 이기주의는 변함이 없다. 그야말로 5중고다.
업체별로 보면 더 심각하다. 현대·기아차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장기간 고전 중이고 한국GM은 GM 본사의 주요 생산기지 지위를 사실상 상실했다. 르노삼성차는 르노그룹이 준 닛산차 일감으로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감이 끊어지면 곧바로 벼랑 끝에 몰리는 구조다. 쌍용차는 오랜만에 ‘티볼리’라는 히트상품을 내놓기는 했지만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너무나 멀다. 사면초가인 자동차 산업이 이대로 방치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자동차 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 될 것이라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에서 울리고 있다.
◇차 산업 장기침체 심각=한국 차 산업의 최전성기는 2011~2012년이다. 당시 현대차의 ‘아반떼’는 미국에서 생애 처음으로 차를 사는 소비자가 가장 갖고 싶어하는 차일 정도로 잘 나갔다. 중국에서는 글로벌 경쟁업체보다 빨리 진출한 효과를 보며 폭스바겐·GM과 함께 3대 성공 사례로 꼽혔다.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한때 10%에 육박했다. 10%는 값비싼 차만 만드는 독일의 BMW나 달성 가능한 수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미국에서는 일본 차의 공세에 ‘쏘나타’ 등 주력 차종이 줄줄이 무너졌고 중국에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사드) 논란과 함께 가성비 좋은 중국 차에 밀려나고 있다.
차 산업 전체로 봐도 하향세가 뚜렷하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1년 자동차 국내 생산은 465만7,094대였다. 그러던 것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2017년에는 411만4,913대로 2011년 대비 11.6% 감소했다. 감소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한국 자동차 업계는 166만8,561대를 생산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77만9,741대에 비해 6.2% 빠진 것이다.
수출은 더 심각하다. 2012년 317만634대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을 걸어 2017년 253만194대까지 내려왔다. 2012년 대비 무려 19.7% 급감한 수치다. 올해 1~5월 수출 역시 100만3,654대로 전년 동기 대비 8만대 이상 줄었다.
자동차 산업의 하향세는 산업계 전체에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2016년 자동차 관련 사업체 수는 4,666개로 전체 제조업체 중 6.8%를 차지했다. 차 산업의 종사자는 35만4,504명으로 제조업 전체의 12%다. 생산액은 197조450억원으로 제조업 총생산액의 13.9%에 달한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차는 3만개 이상의 부품을 조합한 생산품이어서 산업 생태계가 넓다”며 “완성차가 위기에 빠지면 차 산업 생태계 전체가 위험해지고 국민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구조”라고 말했다.
◇수입차에 ‘백기’ 머지않아=자동차 업계가 생산과 수출 감소를 우려하는 가운데 소비자의 수입차 선호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수입차 판매는 2011년 11만7,592대에서 2015년 33만1,858대로 4년 만에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후 디젤게이트의 여파로 2016년, 2017년 줄었지만 올해 아우디와 폭스바겐·포르쉐 등이 복귀하면서 기존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1~5월 수입차 판매는 13만5,35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만1,144대보다 21.8%나 많다.
소비자들이 수입차를 선호하게 된 데는 역설적으로 국내 브랜드들이 큰 역할을 했다. 현대·기아차는 내수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고가 정책을 폈고 한국GM과 르노삼성차는 현대·기아차와의 전면전을 포기하고 함께 높은 가격을 받아 이익을 향유하는 전략을 썼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기아차는 4~5년간 소비자의 기대에 못 미치는 가성비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고 세계 시장에서는 주력 차종인 중형차가 일본·미국 차에 뒤처지는 모습”이라면서 “특히 미국에서는 차 기업의 건강 상태인 인센티브, 가동률, 재고 모두 악화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