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물러선 메르켈, 獨 대연정 붕괴위기 넘겼지만...

오스트리아 국경에 난민심사센터
기사당 제호퍼 장관과 극적 합의
메르켈 "난민 일부 돌려보내겠다"
기존 입장 번복...리더십 타격 불가피
'유럽 맏형' 獨 위상도 낮아질 듯

앙겔라 메르켈(오른쪽) 독일 총리와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3일(현지시간)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 의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베를린=로이터연합뉴스


난민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68년간 이어온 대연정이 붕괴될 위기를 맞았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연정의 한 축인 기독사회당과 극적 타협점을 도출하며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서방 자유민주주의의 기수였던 메르켈 총리가 오랜 기간 견지해온 정책 기조를 뒤집으면서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독일의 자중지란으로 그동안 정치·경제적으로 지주 역할을 해온 독일 역시 입지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AFP통신 등은 2일(현지시간) 기사당을 이끄는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이 이날 메르켈 총리와 난민정책의 해법을 놓고 11시간의 논의를 벌인 끝에 타협안을 도출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제호퍼 장관은 기사당의 비공개 내부회의에서 지난달 29일 유럽연합(EU) 정상들이 합의한 난민정책을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며 당 대표직과 장관직 모두 내놓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제호퍼 장관은 합의안과 달리 다른 국가에 도착해 망명 신청을 한 사람들은 국경에서 돌려보내야 한다며 난민 포용정책을 편 메르켈 총리와 팽팽히 맞섰다. 제호퍼 장관의 반발로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EU 28개국 정상들은 마라톤 협상 끝에 난민 망명신청과 관련된 모든 절차를 처리할 ‘합동난민심사센터’ 설치와 역내 난민 이동제한 등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 협상 카드로 독일 내 난민 문제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사당이 반기를 들었다. 대연정 파트너의 수장인 제호퍼 장관이 사임 의사를 밝히며 압박 수위를 높이자 메르켈 총리는 결국 독일에 들어온 난민과 이주자의 일부를 돌려보내는 절차를 진행하겠다며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이에 따라 독일은 독일·오스트리아 국경에서 망명 신청을 한 난민들을 위한 난민센터를 지어 이미 다른 유럽 국가에 망명 신청을 한 난민들을 책임져야 할 국가로 보내는 절차를 진행한다.

이처럼 메르켈 총리가 EU 정상회의에 이어 독일 내에서도 난민 문제에 대한 최종 타결점을 찾은 것 같지만 외신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외신들은 메르켈 총리가 기민당과 사회당이 68년간 지속해온 동맹관계 붕괴 위기 해소라는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해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타협으로 메르켈 총리의 독일은 물론 유럽 내의 정치적 입지도 크게 흔들리는 등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내다봤다. 통일독일을 이끈 최초의 동독 출신이자 여성 지도자로서 10년 넘게 자유민주주의 기수로 평가돼온 메르켈 총리는 그간 반난민 포퓰리스트 정파들이 득세하는 유럽과 무역갈등을 일으키는 한편 유럽을 위협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맞서 서방의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인식돼왔다. 뉴욕타임스(NYT)는 “국내 정치의 압력에 난민포용 정책을 펴면서 유럽 자유주의 질서를 수호해온 메르켈 총리가 정치적으로 급반전하며 그의 역할이 퇴색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책연구기관인 독일마셜펀드의 토마스 클레인브로코프 베를린사무소장도 “메르켈의 정치적 자산이 고갈돼가고 있다”며 “이제 메르켈 시대의 마지막 장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내의 반발에 굴복한 메르켈의 리더십이라면 독일은 물론 유럽 공동체에서도 위축될 것이고 이는 유럽의 맏형 역할을 해온 독일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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