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중국 난후(南湖)


청나라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건륭제는 재위시절 강남지방 순행을 자주 했다. 1735년부터 60년간 황제로 있는 동안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난징과 항저우 등 유적지들을 돌아보며 풍류를 즐겼다. 남순(南巡)은 황자와 공주·대신·시녀·요리사·호위병 등 3,000여명이 동원된 대규모였다. 건륭제가 남순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반드시 들른 곳이 있다. 바로 저장성(浙江省) 자싱(嘉興)시 남쪽에 있는 난후(南湖)라는 호수다. 이곳은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저장성 3대 호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유난히도 시를 좋아했던 건륭제는 호수 한가운데 조성된 연우루(烟雨樓)에서 철 따라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시를 짓고 읊기도 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호수가 중국 공산당의 태동 장소가 된 것은 뜻밖이다. 천두슈와 리다자오 등 중국 공산주의 운동의 선구자 13명은 1921년 7월 당초 상하이에 있는 프랑스 조계(租界·외국인 거주지)에서 공산당 창당대회를 열려고 했으나 공안당국의 감시 때문에 불가능해졌다. 상하이를 떠난 공산당 대표들이 다시 만난 장소가 바로 난후다. 이들은 소형 유람선 한 척을 호수에 띄운 뒤 그 배에서 창당 선언문을 낭독하고 당 강령을 통과시켰다. 오늘날 당원 수 8,900만명에 달하는 중국 공산당이 폭 3m, 길이 16m의 보잘것없는 배 위에서 탄생한 것이다. 중국 당국은 1959년 이 배를 복원해 난후의 선착장에 띄워놓고 보존하고 있다. ‘홍선(紅船)’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배는 이후 혁명의 의미를 되새기는 공산당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31일 이 홍선에 올라 초심을 잃지 말자는 의미의 ‘불망초심(不忘初心)’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성취에 도취해 중국몽(中國夢) 실현의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시진핑의 당부를 무색하게 하는 일이 최근 중국에서 발생했다. 중국 공산당의 뿌리인 난후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발한 것이다.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자싱 난후구에서 토지수용에 항의하는 수백명의 시민들이 공안과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시민들은 토지수용과 철거정책에 항의하며 정부청사에 난입해 집기 등을 파손하기도 했다. 중국도 이제 당 이념보다는 개인의 이익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인가.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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