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주력업종 정밀진단 ② 반도체] 中 반도체 자급률 70% 땐 韓 치명타..."3~5년이 성패 골든타임"

■한국 반도체산업 현실은
반도체 수출 41%가 中 쏠려 수출입 구조 '아슬아슬'
"2022년 국내 메모리 기대 매출 8조4,000억 손실"
中 추격 현실화되면 韓 '디스플레이 전철' 밟을수도


삼성전자는 지난 2014년 5월 32단 64기가바이트(GB) 3차원(3D) 낸드플래시메모리 양산을 시작했다. 데이터 저장 최소 단위인 셀(cell)을 32단까지 쌓아올린 것은 삼성전자가 처음이었다. 메모리반도체의 일종인 낸드는 셀을 많이 쌓을수록 집적도가 올라가고 같은 용량의 제품이라 하더라도 원가 경쟁력이 확보된다. 얼마나 높게 쌓느냐는 업체의 낸드 기술력을 가늠하는 척도다.

중국 반도체 회사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컴퍼니)는 삼성전자가 꼭 4년 전 본격화한 32단 낸드 양산을 석 달 뒤인 오는 10월께 시작한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최고라는 삼성전자 기술 수준을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와 중국의 낸드 기술 격차가 4년 정도 난다고 보면 맞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32단, 48단 세대를 거쳐 현재 64단 낸드를 주력으로 양산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32단 낸드를 양산한 시점은 2015년으로 삼성전자보다 1년 늦다. 중국과의 격차가 더 좁은 셈이다.

중국의 추격에 노출된 한국 반도체의 앞날을 마냥 밝게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국내 업체들이 주름잡던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의 수익성이 중국 업체들의 본격적인 양산으로 고꾸라진 것처럼 반도체 산업도 디스플레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력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3~5년의 기간이 우리 반도체 산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골든 타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반도체 수출입 구조를 들여다보면 우려가 더 커진다. 3일 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올해 5월 누적 기준으로 중국에 총 209억달러어치의 반도체를 수출했다. 전체 반도체 수출 가운데 41.8%가 중국 한 곳으로 향했다. 중국이 지금이야 10%대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 탓에 한국산 반도체에 목매고 있지만 오는 2025년까지 자급률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중국제조 2025’의 목표가 달성되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직격탄을 맞는다.

이미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산업 진출로 2022년까지 국내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의 기대 매출 손실이 8조4,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정부 용역 보고서도 나왔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메모리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도 삼성과 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의 생산량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중국 업체들이 진입하지 않았으면 국내 업체들이 차지했을 시장을 빼앗기는 효과가 나타나고 이는 결국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이 같은 메모리반도체 양산에 따른 미래의 매출 잠식은 그나마 ‘눈에 보이는’ 위협에 불과하다는 우려도 있다. 양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기술 추격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이뤄질 게 뻔한데 이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아예 뒤집어버릴 수 있어 더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안 상무는 “중국이 양산에 돌입했다는 것은 그들의 기술 추격이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는 ‘테스트 베드’가 마련됐다는 의미”라면서 “기술이 당장 눈부시게 발전하지는 않겠지만 2~3년여의 잠복기를 거쳐 퀀텀 점프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메모리반도체 산업 경쟁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영역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국내 업체들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업체들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이미지센서 등 비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3% 안팎에 그친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레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시스템반도체의 일종인 모바일 AP 시장에서 지난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1%로 퀄컴(38%), 미디어텍(26%), 애플(14%)에 이은 4위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강화에 뛰어들었지만 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대만 TSMC의 벽이 공고하다.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중국이 겨냥하고 있는 기존 D램·낸드 등 메모리반도체를 뛰어넘을 대안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인텔의 경우 ‘3D 크로스포인트’ 자체 기술을 앞세워 차세대 메모리에 승부수를 띄웠다. 인텔은 이 기술을 적용한 노트북용 ‘옵테인메모리’를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진입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뒤바뀔 것이라고 판단한 인텔은 차세대 메모리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면서 “이에 반해 한국은 D램·낸드 등 기존 메모리반도체에 안주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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