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나 미생물이 주변 환경을 통해 자신의 개체 수를 확인하는 원리를 통해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는 바이오 벤처기업 A사는 두 달 전 개발 자금을 모으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시도했다가 난감한 일을 겪었다. 향후 투자금을 주식으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기업 가치를 놓고 온라인에서 논쟁이 벌어지면서 계획을 연기해야 했다. 자금 조달에 실패한 아쉬움도 컸지만 ‘아직 개발한 제품이 없는데 기업 가치가 고평가됐다’거나 ‘임상이 진행된 게 없다’는 투자자들의 지적에 큰 상처를 입었다.
정보기술(IT)이나 콘텐츠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주요 투자 유치 수단으로 자리잡은 크라우드펀딩이 바이오·제약 업계에서는 아직 ‘그림의 떡’이다. 업계 특성상 일반인들로부터 투자받기 어려운 데다가 각종 규제로 인해 바이오업체들도 크라우드펀딩을 꺼리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기업이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의 시제품 단계는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현재까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투자 유치에 가장 성공한 분야는 IT 분야다. 모집 과제 217건 중 146건이 모금에 성공했다. 반면 바이오·제약 관련 기업이 포함된 과학 및 기술 분야는 62건 중 26건에 그쳤다.
크라우드펀딩은 십시일반 일반인들이 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방식은 상품을 제공하는 리워드형과 상장 후 주식 등으로 환원하는 증권형으로 분류된다. 영화 ‘너의 이름은’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배급·마케팅비용을 모금한 뒤 상영에 성공해 화제가 됐다.
자금이 부족해 제품 개발과 서비스 출시를 제때 하지 못하는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으로 크라우드펀딩이 자리잡았지만 바이··제약 업계에는 아직 먼 얘기다. 업계 특성상 개발기간이 길고 내용이 전문적이어서 일반인들의 참여가 낮기 때문이다. 한 바이오 벤처기업 대표는 “자금난에 늘 시달리는 벤처기업에게 크라우드펀딩은 정말 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는 수단”이라면서 “의료기기의 경우 자칫 크라우드펀딩에 나섰다가 광고로 오인받아 본의 아니게 법을 어기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기업들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서려면 일반인들이 투자에 따른 대가를 바로 체험할 수 있는 B2C 제품이나 시제품을 생산한 단계에서 실시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조언한다. 유전자 분석 스타트업인 제노플랜이 DNA를 분석해 다이어트 솔루션을 제공하는 상품을 개발해 제일 먼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 선보인 게 대표적이다. 제노플랜은 5,000만원가량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모금한 이후 벤처캐피탈(VC)로부터 후속 투자를 이끌어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업체인 와디즈 관계자는 “크라우드펀딩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기업에 애정을 갖고 팬심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최초 펀딩이 어렵지만 한번 성공하면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코넥스 상장도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