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참여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속속 사업 중단 및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중국의 21세기 실크로드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스리랑카가 부채 부담으로 결국 항구 운영권을 중국에 넘긴 것을 계기로 미얀마와 말레이시아 등에서 인프라 통제권을 고스란히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5일 일간 더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 정부가 동부해안철도(ECRL) 사업을 위해 설립한 말레이시아레일링크(MRL)는 최근 시공사인 중국교통건설에 공사 중단을 지시했다. ECRL 사업은 말레이 반도 동부 툼팟에서 서부해안에 있는 최대 항구 클랑까지 668㎞ 구간을 잇는 철도를 건설하는 것으로 중국이 사업비 550억링깃(약 15조원)의 85%를 융자하는 조건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지난 5월 들어 말레이 새 정부는 사업비용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측면이 있고 수익성도 의심된다며 해당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림관엥 말레이 재무장관은 “토지수용 비용 등을 포함하면 총 사업비가 809억2,000만링깃까지 치솟는다”며 “조만간 중국을 방문해 사업조건을 재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도 중국이 후원하는 90억달러 규모의 차우퓨 심해항 건설사업을 재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초윈 미얀마 재무장관은 이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사업규모 축소를 요구할 생각”이라며 “투자비용을 갚을 수 있는 수준으로 수익성이 충분한지 신중히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과 공동 추진하던 일대일로 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나선 것은 중국에서 빌린 건설 비용을 갚지 못할 경우 인프라 운영권을 고스란히 중국에 넘기게 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은 완성 후 발생하는 수익으로 중국에 진 채무를 갚도록 명시한 계약이 대부분이다. 이는 향후 채무상환이 어려워질 경우 인프라 운영권을 모두 중국에 양도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 싱크탱크인 세계개발센터에 따르면 일대일로 참가국 중 라오스·몰디브·몽골 등 8개국은 이미 중국에 대한 대규모 부채상환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태다. 이미 우려가 현실이 된 곳도 있다. 스리랑카 정부는 중국의 지원을 받아 함반토타 항구를 개발했지만 빚을 갚지 못하자 지난해 중국에 99년간 항구 운영권을 넘겼다.
그러나 각국이 사업 재검토를 요구해도 중국 측과의 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는 인프라 정비뿐 아니라 중국의 권익확대 의도까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미 싱크탱크 C4ADS는 “중국이 투자한 항구들은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며 “저개발 국가의 인프라 개발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되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사실상 군사전략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이런 투자가 가능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