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WHAT]플라스틱 범벅 생선, 2050년 식탁을 점령하다

■플라스틱 공습에 신음하는 지구
바다 배출되는 플라스틱 年 800만톤
글로벌 참치 어획량 맞먹는 수준
5㎜ 이하 플라스틱이 가장 큰 문제
먹이사슬 정점 인간 생명까지 위협
美 시애틀, 빨대 사용에 벌금 부과
맥도날드도 종이빨대로 대체 방침
인도 정부도 일회용 금지 나섰지만
재활용·재사용 외 근본대책 없어



지난해 세계 고래의 날을 맞아그린피스 필리핀이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설치한 고래 조형물. /트위터 캡처

인도 뭄바이시 인근 아라비아해 마힘 해변에서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아이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해변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있다. /뭄바이=EPA연합뉴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호주 해안가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 스페인 남부 무르시아 해변에 길이 10m의 향유고래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사인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야생동물구조센터가 부검을 위해 배를 가르자 무게 6톤의 고래 뱃속에는 29㎏의 그물과 밧줄·비닐봉지 등 해양쓰레기가 뒤엉켜 있었다. 고래의 사인은 쓰레기에 의한 복막염으로 판명됐다. 이에 앞서 2010년 4월 미국 웨스트시애틀 해변에서는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조각, 수술 장갑, 테이프 등이 배를 가득 채운 회색고래의 시체가 떠밀려 와 충격을 주기도 했다.

편리함을 위해 일상에서 사용하는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등이 바다를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강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양생명체는 물론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기 시작했다. 2015년 세계적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은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육지에서 바다로 배출되는 플라스틱 쓰레기 양이 2010년 기준 매년 최소 800만톤에서 최대 1,270만톤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800만톤은 매년 바다에서 잡아들이는 참치 어획량과 동일하며 지난해 한국 어획량(374만3,000톤)의 2배가 넘는 양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금 같은 속도로 바다를 오염시킬 경우 오는 2050년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독일 국책연구기관 헬름홀츠환경연구센터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 8개 강과 아프리카 지역 2개 강이 전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90%를 배출한다. 특히 중국 양쯔강은 플라스틱 쓰레기 연간 배출량이 150만톤으로 조사 대상인 57개 강 가운데 가장 많았다. 전 세계 배출량의 19%가 양쯔강에 집중된 셈이다. 양쯔강 유역은 중국 전체 인구의 3분의1이 거주할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양쯔강에 이어 인도의 인더스강, 중국 황허강·하이허강, 인도 갠지스강 순으로 많았다. 헬름홀츠환경연구센터의 크리스티안 슈미츠 박사는 “집수시설 주변의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서 쓰레기가 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결국 바다로 유입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플라스틱이 해양생물뿐 아니라 먹이사슬의 끝에 있는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플라스틱은 자연에서는 거의 분해되지 않는다.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은 해안과 바다 한가운데서 바람과 파도의 힘으로 점차 작게 분쇄돼 크기가 5㎜ 이하인 ‘미세 플라스틱’으로 변한다. 이 미세 플라스틱을 플랑크톤 등이 먹고 이 플랑크톤을 생선이나 조개 등이 섭취하면 결국 먹이사슬의 정점에 위치한 인간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생명과학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인 PNAS에 따르면 지구 해양 표면의 88%는 이미 플라스틱 파편으로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양환경보호전문가그룹(GESAMP)은 미세 플라스틱 오염실태를 평가한 보고서에서 “지역적으로 밀도 차이가 있을 뿐 조사가 이뤄진 모든 곳에 플라스틱이 있었다”고 밝혔다. 네이처 등의 학술지에도 육지에서 수천㎞ 떨어진 빙하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빙하가 녹을 경우 바다에 유입되는 미세 플라스틱의 양이 늘어나는 것은 예측 가능한 결과다. 슈미트 박사는 “플라스틱에 각종 첨가제나 중금속 등 오염물질이 흡착됐을 경우 사람의 DNA를 해치거나 파괴할 수 있는 독성이 나온다”고 우려했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이 인지되면서 세계 각국에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4일(현지시간) 남미 칠레에서는 정부의 비닐봉지 사용금지 조치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칠레 플라스틱산업협회가 제기한 위헌소송에서 헌법재판소가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됐다. 미국 시애틀에서는 이달 1일부터 음식과 음료를 파는 외식업체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빨대와 식기류를 제공할 경우 벌금 250달러(약 28만원)를 부과한다. 미국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벌금까지 부과한 도시는 시애틀이 처음이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다른 미국 대도시들도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값싼 대체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의 경우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며 인도 정부는 지난달 비닐봉지와 음식용기, 수저나 포크 등을 포함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발효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 공장이라는 오명을 쓴 중국은 지난해 7월부터 폐플라스틱과 폐지·폐섬유 등의 수입을 줄여나가고 있다.

기업 차원의 노력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맥도날드는 9월부터 영국과 아일랜드에 있는 1,361개 맥도날드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사용하겠다고 밝혔으며 미국 매장에서도 시범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천문학적인 규모로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감옥에 갇힌 지구를 살리려면 인류의 자정 노력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최대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되 부득이하게 사용할 경우 반드시 재활용할 수 있도록 촘촘하게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캐라 라벤더 로 미국해양교육협회(SEA) 연구교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묘책은 없다”며 “재사용, 재사용, 재활용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