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명문장수기업센터가 발간한 ‘2017 중견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를 보면 조사대상의 절반에 가까운 47.2%의 중견기업인들이 기업 영속의 기본 조건으로서 기업승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과도한 상속 및 증여세 부담’을 꼽았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가업상속공제 제도(31.2%)’, ‘후계자 역량 부족(19.2%)’ 등도 지적됐다.
이번 조사는 2017년 10월부터 11월까지 125개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일종의 경영권 프리미엄인 최대주주 할증률까지 더하면 최대 65%까지 치솟는다. 반드시 거쳐야 할 승계가 기업 재도약의 모멘텀이 아닌 기업 포기의 시점이 될 수 있다는 중견기업인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가업상속공제 요건도 매우 까다롭다. 기업승계 이후 10년간 업종과 정규직 근로자의 80% 이상, 상속지분 100%를 유지해야 한다. 설문에 참여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이러한 환경에서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사업재편, 신사업 진출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중견련 관계자는 “기업 경쟁력 잠식을 방지하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전·사후관리요건을 현실화해야 한다”라며 “히든챔피언과 명문장수기업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과 일본처럼 사후관리기간을 5년 또는 7년으로 단축하고, 업종전환과 자산처분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중견기업들은 명문장수기업 육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41.6%)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서는 ‘가업상속공제 제도 개선(33.6%)’, ‘명문장수기업확인제도 세제혜택 부여(30.4%)’, ‘기업승계 부정적 인식 개선 캠페인(28.0%)’, ‘공익법인·차등의결권 등 기업승계 방안 추가 개발(20.8%)’ 등이 원활한 기업승계와 명문장수기업으로의 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으로 꼽혔다.
또 원활한 기업승계를 위한 지원사업으로는 ‘법률·조세·회계·경영 컨설팅 지원(48%)’을 첫 손에 꼽았다. ‘가업승계, 신사업/M&A, 명문장수기업 등 통합 컨설팅(33.6%)’, ‘기업승계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위한 세미나, 포럼 개최(24.0%)’, ‘후계자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및 커뮤니티 구성(20.0%)’등이 뒤를 이었다.
대다수 중견기업들은 체계적인 기업승계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37.6%의 중견기업들이 고령의 창업주가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중견기업 세 곳 중 한 곳은 십수년 내에 기업승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
기업승계 원칙, 기준,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문서화한 곳은 12.8%에 불과했고, 87.2%는 아직 제대로 된 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단적으로 성장과 영속성을 조화시킬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중견기업계 관계자는 밝혔다.
가업승계 시기가 임박함에 따라 중견기업의 실질적인 후계자 경영수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견기업인들은 기업승계를 재도약의 전기로 만들기 위해 확고한 경영철학과 기업가 정신, 현장 실무능력을 두루 갖춘 후계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수행하고 있거나 도입할 필요가 있는 경영수업 형태로는 72%의 중견기업인들이 사내근무를 꼽았다. 현장 친화력을 높여 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무 능력을 키우는 동시에 우수인재를 확보하려는 두 가지 목적을 충족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후계자의 핵심 자질로는 경영철학 및 기업가 정신(50.4%), 리더십 및 조직관리(32.8%), 전문적 지식 및 기술(7.2%), 글로벌 경영능력(6.4%) 등이 꼽혔다.
김규태 중견련 전무는 “일부 편법 승계와 준비되지 못한 후계자들의 일탈은 분명히 기업이 자성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지만, 이로 인해 기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질시하는 타성적 인식이 강화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왜곡”이라며 “기업가 정신과 영속 법인의 사회적 역할 전수로서 기업승계에 대한 합리적 인식을 확산하고, 가업상속제도, 명문장수기업 확인제도 등의 개선과 중견기업 후계자 역량 강화 교육 등을 통해 중견기업의 원활한 기업승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해욱기자 spook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