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칼럼] 글로벌 무역전쟁 파고를 넘으려면

경기 침체와 물가 급등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커져
무역·투자 다변화 속도 내고
기업활력 제고·혁신성장 올인을

전 금융위원장·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지난주 6일 세계 1·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관세폭탄 투하로 통상마찰은 전면전에 돌입했다. 우려했던 주요2개국(G2·미중) 무역전쟁이 촉발되면서 지난 70년간 지속돼온 세계 교역 패러다임의 역사적 변혁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유럽연합(EU)의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 발동에 이어 러시아·캐나다가 보복관세에 가담하면서 무역충돌은 전 세계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전쟁은 큰 파장을 예고하고 단기간 내에 해결 기미가 없다 보니 본격적인 글로벌 경기침체의 서막으로 읽힌다.

현시점에서 향후 추이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신흥국에 미칠 충격파에 대한 경고음은 벌써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 기조에다가 국제유가 상승, 그리고 추가 관세부과에 따른 교역 감소와 수입 물가 상승이 잇따르면 경기침체와 물가급등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 미칠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통상마찰 확산 전망의 근거로는 초 호황기를 맞은 미국이 현시점을 무역수지 적자구조를 개선하고 글로벌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할 적기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이와 관련해 당면한 세계 경제의 최대 도전은 ‘트럼프 리스크’라는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주필의 지적이 눈길을 끈다. ‘동맹보다 거래, 다자(多者)주의보다 양자(兩者)주의, 일관성보다 불예측성, 규범과 질서보다 힘, 이상과 가치보다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스타일은 세계 경제와 안보지형, 나아가 미중 헤게모니 다툼의 향방을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는 분석이다.

한국 수출의 4분의1을 차지하는 중국의 딜레마도 문제다. 올해 들어 중국 증시와 위안화 급락으로 금융 불안이 깊어지고 기업 부도율도 사상 최대치로 늘어나면서 실물경제의 둔화도 가시화되고 있다. 부채감축 드라이브로 중국의 2·4분기 성장이 약화하면서 올 성장률은 인도에 뒤처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방 세계의 중국 견제 분위기는 중국 주도의 반보호무역주의 전선 구축도 어렵게 한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은 아시아 주변국의 부채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경고 발언도 예사롭지 않다. 물론 3조달러의 외환보유액에다 중국 정부의 시장 통제수단을 감안하면 급격한 위기 가능성은 낮지만 통상마찰과 국가부채 등 구조적 취약성은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훼손시키고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개연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몽(中國夢)을 기치로 내건 시진핑 정부가 무역전쟁에서 쉽게 꼬리 내릴 입장이 아니다 보니 전면전과 장기전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무역전쟁 확산에 따른 세계 경제 최악 시나리오의 현실화 우려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외 환경변화를 더욱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철저한 선제적 대응이 필수과제다.

우선 무역·투자 다변화 전략에 속도를 내야 한다. 우리 국민총생산(GDP) 대비 미중 양국 무역의존도가 근 70%에 달하는 쏠림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포스트 차이나’ 전략의 실행이 시급하다. 한국의 3대 수출국이자 최대 투자국인 베트남과 인도 등으로 다변화 노력을 확대하고 정부의 신남방정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자유무역주의를 위한 국제공조에 적극 동참하고 국익을 극대화하도록 대외 통상외교 역량도 높여야 한다. 금융·실물 복합위기 가능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체제 강화도 당면과제다. 4,000억달러를 넘은 외환보유액에 안주하지 말고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등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다급한 과제는 기업의 활력 제고다. 세계 무역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전사(戰士)들이 제대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의 현안이 있지만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이 힘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국가경쟁력도 키우고 민생도 살린다. 정책은 타이밍이고 상황변화에 따른 우선순위 조정이 관건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이나 대북경협도 나라 경제가 살아야 가능하다. 과도한 위기감 조성은 피할 일이지만 확고한 위기의식은 필수다. 지금은 경제 체질개선과 체력강화로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도록 혁신성장 가속화에 올인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