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최저임금 16.4% 인상 결정이 나오자 가장 크게 반발한 사람들은 600만명에 육박한 자영업자들이었다. 2~3명을 고용해 인건비장사 수준의 이익을 보고 있는데 최저임금을 16%나 인상하면 실적에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월평균 매출은 지난 2016년 하반기 3,870만원에 달했으나 지난해 상반기 3,787만원, 하반기에는 3,438만원까지 급감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3,372만원으로 더 줄었다. 이익은 축소되는데 비용은 늘어나자 대출을 늘렸다. 급기야 자영업자 부채는 최근 4년래 가장 많이 늘었다. 경영적자와 폐업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빚을 늘린 것이다.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자영업자 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영업자의 대출잔액은 549조2,000억원으로 전년보다 69조원(14.4%) 증가했다. 전년 증가율 13.7%보다 높고 2013년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전체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6년 11.6%에서 지난해 8.1%로 줄었는데 자영업자는 도리어 빚 증가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자영업자 대출이 500조원을 넘은 것도 처음이다.
올해는 속도가 더 빨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내수가 부진한데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실제 자영업자의 은행권 개입사업자 대출은 올 상반기 13조3,000억원 늘었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11조4,000억원)보다 2조원가량 많은 액수다. 비은행 대출까지 합치면 빚 증가폭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양만 느는 게 아니라 대출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제도권 대출에서 밀린 자영업자들이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 비은행에 몰리면서다. 지난해 자영업자의 비은행 대출은 26.5% 늘어났다. 은행 대출 증가율 9.7%보다 3배 가까이 높다. 비은행 대출 비중도 26.7%에서 30.6%로 치솟았다. 비은행 대출은 이자가 높고 만기가 짧아 빚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는 우리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로 불린다. 소득 대비 빚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자영업자의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중은 189.1%로 전체 평균(150.6%)보다 크게 높았다. 빚이 소득의 두 배 가까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빚 증가 속도가 더 가팔라지고 고금리 대출 이용이 늘어나면 무더기 파산 사태가 벌어지고 그 충격이 경제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남대문시장에 위치한 한 상가의 폐업 점포들이 일제히 셔터가 내려진 채 삭막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김동호기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등 주요국의 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뛰고 있다는 것도 우려스럽다. 한은에 따르면 올 5월 신규 취급액 기준 신용협동조합의 대출금리는 4.89%로 1년 전보다 0.21%포인트 올랐다. 신용협동조합도 0.32%포인트, 은행 가계대출도 0.28%포인트 상승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자영업자 가구의 평균 이자 부담은 122만2,000원 늘어난다. 일반 가계(94만1,000원)보다 30만원 가까이 많다.
정부 내에서도 자영업자 대출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한 위원은 최근 “지난 수년간 가계부채가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만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신용대출, 개인사업자 대출이 늘어나 금융안정 관련 잠재 리스크가 누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실 조짐은 이미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소매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의 은행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4분기 0.4%에서 올해 1·4분기 0.45%로 상승했다. 제조업 자영업자도 같은 기간 0.54%에서 0.56%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부채 연체율이 0.26%에서 0.25%로 줄었음을 감안하면 자영업자의 대출 부실이 더 눈에 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의 빚 부담 완화, 소득 기반 확충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올해와 같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내년에 재연되고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불난 곳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경고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저임금이 또 크게 오르면 자영업자의 경영난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대출 부실 우려가 크다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질이 안 좋은 대출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만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자영업 시장 전반의 구조조정을 통해 영세한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저소득자의 주거비 등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식 의원도 “생계형 자영업자들을 재훈련을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로 옮겨주고 고용 안전망을 강화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