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24/7] '여친 셀카' 유포하고 협박해도…'성폭력' 처벌 못하는 현실

<몰카근절 왜 어렵나>
몰카 사건 6년새 6배 가까이 늘었지만
기소율 매년 떨어져 2016년 31% 그쳐
현장서 불법촬영 포착해도 휴대폰 파기
사진 숨겨주는 앱으로 빠져나가기 일쑤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통과 시급" 지적

10일 서울 홍대입구역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 관련 홍보물을 게시돼 있다. /권욱기자

“딱 걸렸네. 거기 서세요!”

지난 10일 오후7시께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 사복 차림의 지하철경찰대 소속 임모(45) 형사가 계단을 오르는 한 남자의 팔을 잡아챘다. “방금 카메라 켜서 여자분 치마 밑에 댄 거 제가 다 봤습니다.” 팔이 잡힌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뿌리치려 애썼다. 두 사람이 실랑이하고 있는 사이 ‘몰카’를 당한 여성이 놀란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이 사람은 제 남자친구인데요.” 얼굴에 ‘아차’하는 표정이 스친 임 형사는 남자의 팔을 놓고 사과했다.

서울경제신문이 불법촬영 단속에 동행한 이날 경찰은 꼬박 4시간 동안 홍대입구역을 지켰지만 몰카범은 단 한 명도 잡지 못했다. 임 형사는 “어렵사리 현행범을 잡아도 그 자리에서 도망가거나 증거를 없애려 휴대폰을 부수기까지 한다”며 “5시간씩 서 있다가 겨우 한 사람을 잡아 휴대폰 앨범을 열었는데 비밀 폴더에 사진을 저장해 사진을 못 찾은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몰카 범죄를 막아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경찰도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몰카범 체포는 첩첩산중이다. 불법촬영 범죄는 순간적으로 발생하는데다 피해자가 찍힌 것을 알아채기 힘들다. 어렵사리 현장을 포착해도 휴대폰을 폐기해 증거를 제거하거나 카메라와 저장된 사진을 숨겨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피해가기 일쑤다. 실제로 몰카 범죄가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많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가 일행인 경우 “합의하에 촬영한 것”이라고 주장하면 수사관은 손 쓸 도리가 없다.


불법촬영, 이른바 ‘몰카’ 사건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연간 몰카 범죄 발생 건수는 2011년 약 1,600여건에서 2017년 6,600여건으로 크게 늘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암수범죄까지 포함하면 실제 범행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사법당국의 제재는 이런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검찰의 몰카 범죄 기소율은 2011년 71.5%에 달했지만 매년 떨어져 2016년에는 31.5%에 불과했다.

경찰관들은 몰카 범죄 행태가 다양해지면서 처벌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호소한다. 실제 △일반인 셀카 편집·합성 △노출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 △몰카 촬영물을 다운로드 받아 재유포 △피해자 스스로 찍은 촬영물을 제3자가 동의 없이 유포한 경우 등이 모두 현행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처벌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동의 없는 촬영·유포를 제외한 신종 범죄는 모욕죄 등 6개월 내 고소가 이뤄져야 하는 기타 죄목을 적용해야 하고 인정되더라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그친다. 몰카는 최근 ‘양예원 스튜디오 촬영회 사건’에서 보듯 한 조직이 촬영→유포→삭제까지 한 번에 처리하는 방식으로 산업화하고 있다. 아울러 촬영물을 이용한 성폭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한 일선 경찰서의 형사는 “몰카 촬영물이 일종의 ‘음란 콘텐츠’로 거래되면서 피해자의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현행법상 영리목적 유포행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촬영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대신 몰카 촬영물 공급책에 대해 방조 혐의를 적극 적용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실제 몰카 범죄가 점점 고도화하다 보니 당국의 단속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서울시의 경우 여자화장실을 점검하는 ‘여성 안심 보안관’ 제도를 2년 전부터 도입해 10만여 화장실을 점검했지만 몰카를 한 건도 잡아내지 못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직접 이동하며 촬영하는 ‘직접 촬영’ 유형이 대다수(85%)고 위장형 카메라를 이용한 범죄는 5%에 그쳤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대책이었던 셈이다.

불안을 호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집회에 6만명을 동원한 ‘불법촬영규탄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은 “남성 몰카범에 대한 편파수사를 중단하고 불법촬영 범죄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여성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정현백 여가부 장관을 비롯한 장관들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에 몰카 범죄를 막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전국 공중화장실 점검, 변형카메라 판매·제조 등록제, 음란사이트 수사 강화 등 대책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다변화되는 몰카 범죄를 포괄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현행법상 스스로 찍은 촬영물을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할 방법이 없어 온라인에서 미성년자를 꾀어 셀카 영상을 받아놓고 이를 유포했지만 성폭력으로 처벌받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면서 “국회에 수차례 계류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통과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를 비롯한 31개 여성단체는 온라인 공간에서 몰카 촬영물을 다운로드 받아 재유포하는 등의 가담 행위도 성폭력으로 처벌될 수 있도록 성폭력처벌법을 보다 촘촘하게 개정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여성들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일 때 마음속 그 어떤 두려움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을,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포르노’가 아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응답할 차례다.
/오지현·신다은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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