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언어정담] 와락, 누군가를 꽉 안아주는 아름다운 몸짓

작가
소중한 존재를 와락 껴안을 때
'앎' 넘어서는 깊은 '느낌' 받아
존재와 존재 사이에 다리 놓는
우정·배려의 포옹 많아졌으면




살아있는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동작들은 저마다 아름답지만, 나는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포옹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몸짓이라고 생각한다. 와락, 누군가가 누군가를 안아줄 때, 우리의 몸은 부드럽고 따스한 곡선들로 가득해진다. 팔은 둥그렇게 대상을 감싸고, 평소에 뾰족하게 솟아있던 어깨라도 누군가를 안아줄 때는 둥글둥글하게 모난 곳이 사라진다. ‘살포시’ 감싸 안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와락’ 껴안는 깊은 포옹에서는 ‘저 사람이 나를 진실로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애틋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살며시’, ‘부드럽게’ 감싸 안는 포옹에 비하면, ‘와락’은 훨씬 강렬하고 갑작스러우며 열정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클림트의 ‘키스’는 키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내 눈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포옹이라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구나’하는 깨달음을 선사해준 작품으로 다가왔다. 마치 포옹이라는 몸짓을 처음으로 발명해낸 것처럼, ‘키스’ 속의 두 연인은 아름답고 처절하게 서로를 격정적으로 끌어안고 있다.



나는 ‘안다’라는 단어보다 ‘느끼다’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서로 바라보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은 상대를 아는 데 도움이 되지만, 포옹을 하거나 손을 잡는 등의 친밀한 접촉을 통해서는 그 사람이 말하지 않는 것까지도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언어로만 소통하던 사이에서 포옹을 하고 나면 한껏 친밀한 느낌을 받는 이유도 포옹은 ‘앎’을 넘어 ‘느낌’을 향해 도약하는 몸짓이기 때문이 아닐까. ‘언어’는 ‘이해’와 밀접하지만, 포옹을 비롯한 신체적 ‘접촉’은 ‘느낌’과 더욱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깊은 포옹은 아무하고나 나눌 수 없으며 매우 친밀한 관계에서만 가능한 몸짓이다. 언어로 소통하기 어려운 동물과도 ‘포옹’을 통해서는 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깊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물론 말이나 소까지도, 인간의 포옹이 지니는 따스한 사랑의 의미를 ‘이해’는 못하더라도 ‘감지’할 수는 있다. 소중한 존재를 와락 껴안을 때 우리는 그에 대한 ‘앎’을 넘어 그에 대한 ‘느낌’의 바다로 노 저어 나갈 수 있다.

누군가를 깊이 안아준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향기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의례적인 포옹이 아닌 깊고 따스한 포옹은 이성의 장벽을 뛰어넘어 감성의 차원으로까지 관계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 원초적 포옹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장면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이미지 중 하나는 2007년 이탈리아 만토바 부근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서로 포옹하는 유골’의 모습이다. 무려 6000여 년 동안 서로 포옹하고 있었던 이 아름다운 유골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저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을 하는 채로 죽음을 맞는 것이 가장 행복한 길이 아닐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고 그와 같은 시간에 죽을 수 있다면 그가 나를 땅 속에 묻거나 어딘가에 흩뿌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고통을 겪게 하지 않아도 되니까.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우정과 배려와 존중의 포옹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포옹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사람과 사람의 껴안음을 오해하지 않는 그런 보편적 따스함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와락 당신을 껴안는 순간, 우리는 각자의 개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제3의 무언가가 존재하기 시작함을 깨닫는다. 포옹을 하면, 그 사람을 많이 아끼고 많이 애틋하게 여겨야만 느낄 수 있는 깊은 공감의 아우라 같은 것이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 존재와 존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사다리를 놓는 듯한 행복한 착시가 느껴진다. 포옹의 순간은 번짐의 순간, 피어남의 순간, 타오름의 순간이다. 존재가 존재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다른 존재와 완전히 겹쳐질 수 있는 강력한 해방의 순간이 바로 포옹의 순간이다. 와락, 당신을 껴안는 순간, 나는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나를 많이 걱정하고, 당신이 나 때문에 오래 아파했다는 것을. 당신이 나를 와락 껴안아주는 순간, 나는 느낀다.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포옹의 순간을, 존재와 존재의 완전한 합일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