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 차에 경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때문일까. 최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는 말들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하반기 정책 기조 점검회의에서 참모진에 기업과의 소통을 강조한 데 이어 지난 9일에는 인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여기에 내용은 둘째치고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파기도 공식화했다. 정권 실세에 눌려서인지 흡사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같이 고분고분하던 여당에서마저 “정책이 시장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최운열 의원)”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만큼 위기감이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반응은 싸늘하다. 심지어 ‘여론 떠보기가 아니냐’는 냉소마저 흐른다. 근거도 없지 않다. 앞에서는 기업에 고용과 투자를 당부하지만 뒤로는 지배구조에 대한 압박, 적폐 청산 대상으로의 과도한 몰아세우기가 여전하다고 말한다. 최근만 해도 노조 와해 공작 수사를 명분으로 검찰의 삼성전자 압수수색이 있었고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사와의 전쟁을 언급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한국타이어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도 있었다. 재계는 삼성 총수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VIP’의 태양광 공장(한화) 방문, 수소차(현대차) 시승, 사이언스파크(LG) 방문을 예로 들며 의미 부여에 조심스럽다. 한 기업의 임원은 “흔히 청와대와 부처 간 엇박자가 문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한통속 아니냐”며 “경제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청와대가 마지못해 유화 제스처를 보이고 있을 뿐”이라고 혹평했다. 정부로서는 서운할 만도 한데 이것이 현실이다. 시장이 정부의 친기업 행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빈부격차 해소, 일자리 창출, 사회정의 실현 등을 이유로 기업의 팔을 비틀어왔으니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사실 이런 시각에는 ‘사람(정권의 속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경험칙이 녹아 있다. 결국 ‘경제 살리기’가 한낱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진보주의자가 명품을 걸친다고, 보수정치인이 시장통에서 얼쩡거린다고 위선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세상은 단칼에 무를 썰듯 명료하지 않고 더구나 경제는 선악의 문제도 아니다. 이념으로 경제를 재단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노동이사제 등 첨예한 갈등이 걸린 이슈는 정부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일 수 있다. 이런 문제에서 문 대통령이 대승적 차원의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 그래야 정부를 향한 시장의 의구심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정책 부작용을 바로잡으려는 ‘결기’가 없다면 경제는 진짜 나락으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