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뒤 각계의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최저임금제도 자체에 대한 개선 요구가 들끓고 있다. 노사가 아닌 정권이 사실상 인상률을 결정해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정치적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24.2% 오른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에서는 2년 만에 29%나 뛰는 등 정권이 바뀌자마자 널뛰기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 결정권을 당사자인 근로자와 사용자에 돌려주고 최저임금 결정주기도 2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7일 정치권과 재계 등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권과 보수 성향의 노동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결정주기를 현 1년에서 2년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최저임금을 올리면 임금 인상이 소득분배와 고용에 주는 영향을 분석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 5월 말 통계청에서 하위 20% 가구의 1·4분기 소득이 전년 대비 8% 줄어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고 발표하자 이것이 최저임금 효과인지를 두고 정부와 경제계가 갑론을박을 벌이며 혼란이 일기도 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처럼 물가와 생계비지표를 활용한 ‘계산식’을 기초로 최저임금을 2년마다 한 번씩 정해야 한다”며 “소모적인 논쟁을 막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효과 분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협상에서 고용시장과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배제된다는 지적도 많다.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최저임금의 소득분배 기능만 강조되면서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고용·임금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고용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문구를 최저임금법에 넣는다면 고용 측면의 영향도 부각될 수 있다”고 했다. 현행 최저임금법 제1조에는 “근로자에 대해 임금의 최저 수준을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규정에 ‘고용과 기업에 대한 고려’도 넣자는 제안이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의 정치화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각계에서 제기됐다.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위원 9명과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근로자위원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추천하고 사용자위원은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소상공인연합회 같은 전국 규모의 사용자단체가 추천권을 갖는다. 하지만 노사가 팽팽히 맞선 상태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정권의 성향에 공익위원들이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근혜 정권 4년간 최저임금은 시간당 5,210원에서 6,470원으로 24.2% 올랐다. 반면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최저임금은 6,470원에서 내년에 8,350원으로 2년간 29%나 뛰었다. 최저임금위의 ‘탈(脫)정치화’가 시급한 이유다. 최영기 한림대 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는 “최저임금은 주는 사람(사용자)과 받는 사람(근로자)이 합의해야 할 사안인데 정권의 정책으로 변질됐다”며 “공익위원의 영향력을 줄여 최저임금위를 탈정치화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유럽 사례를 참조해 공익위원의 구성과 역할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박 교수는 “독일은 최저임금 협상에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이 각 3명씩 참여하는데 공익위원 3명은 결정권한이 아예 없는데다 노동계 추천 1인과 사용자 추천 1인, 노사 공동추천 1인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최저임금에 관여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지난해 최저임금위 수장이었던 어수봉 전 위원장은 “현재는 고용부가 공익위원을 전부 추천하지만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 같은 연관 부처에서도 공익위원 추천권을 가져야 노동계와 기업 중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은 위원의 임명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이번 최저임금위의 파행을 불러온 최저임금 차등화 적용 방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앞서 최저임금위 사용자위원들은 영세 소상공인에게 더 낮은 인상률을 적용해달라고 요구했다가 부결되자 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현재로서는 차등적 최저임금이 ‘또 다른 최저임금’을 초래할 수 있고 업종별 최저임금을 산출하기 위한 생계비·임금현황 등 기초자료를 만들기도 어렵다는 게 최저임금위의 반론이다.
전문가들은 업종별은 어려워도 지역별 최저임금은 충분히 가능할 뿐 아니라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국 행정구역별 물가·생활비, 평균 임금 등 최저임금 산정 자료는 상대적으로 집계가 쉽다. 최 교수는 “중앙에서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되면 지역 각지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일본의 사례를 참조할 경우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화하는 게 어렵지 않다”며 “서울과 지방의 생활비 차이가 큰 국내 특성상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화는 꼭 필요한 제도”라고 전했다.
/세종=이종혁기자 임지훈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