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무대왕과 힘 있는 해양국가

장보고 해상무역 밑거름 역할
문무대왕 진취적 해양 정책서
힘있는 해양국가 될 교훈얻길

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장


수년 전부터 아프리카 동북부 소말리아와 서부지역인 나이지리아 해역, 그리고 중동 남부의 예멘이 접한 아덴만 해역 등을 중심으로 해적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해적들로부터 자국민과 자국 어선 및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 해역에 함선을 파견해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9년 3월부터 이들 해역을 지나는 우리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해군 청해부대를 파견해왔는데 지난달 28일에는 27진인 왕건함이 출항했다.

청해부대는 올해 3월 가나 해역에서 우리 국민 3명이 탄 어선이 피랍되자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출동해 이들을 안전하게 구출했다.

이러한 청해부대의 활동과 관련해 1,000년도 훨씬 전인 신라시대의 두 ‘해양 위인’이라고 할 수 있는 문무대왕(재위 661~681)과 장보고(?~846)가 오버랩되는 것은 흥미롭다.

청해는 해상무역으로 통일신라를 부흥시켰던 장보고가 전남 완도에 설치한 해상무역기지인 청해진에서 따온 명칭으로 해양수호 의지를 상징한다. 2009년 3월 청해부대 1진으로 참여한 문무대왕함은 우리 함정 중 지금까지 아덴만 파견 경험이 여섯 번으로 가장 많다. 3월 가나 해역에서의 우리 선원 구출작전에 투입된 함정도 바로 문무대왕함이다.


사실 우리는 역사에서 해양력을 거론할 때마다 장보고를 최우선으로 꼽는다. 장보고 선단은 중국 산둥(山東)반도는 물론 남부의 취안저우(泉州), 심지어 일본 등지에까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신라방만이 아니라 일본 승려 예닌의 항해에 도움을 준 역사적 기록까지 가히 동아시아 해양 패권자로서의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증좌가 풍부하게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 무역왕으로 인식되는 장보고의 해양력을 한 개인과 집단의 힘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장보고의 활동 이전에 신라가 구축해온 장대한 해양력이 뛰어난 인물을 만나 꽃을 피웠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이러한 점에서 장보고보다 150여년 앞선 문무대왕의 해양정책과 해양보국정신을 새삼 되새겨보게 된다. 실제로 신라시대의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해양활동이 가장 두드러진 시기는 7세기 문무대왕 시대다. 문무대왕은 수군을 잘 조직해 훈련시켰고 뛰어난 병선을 만들어 당나라와의 해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군사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인 병부(兵部)에서 선부(船部)를 독립시켜 병선 제작 업무를 맡긴 것도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문무대왕이 남긴 대표적인 해양문화유산으로는 경북 경주시 봉길해수욕장 앞바다에 있는 수중릉 대왕암과 이를 바라보는 이견대, 그리고 감은사가 있다. 우리 역사에서 왕이 자신의 산골처를 바닷속에 설정한 경우는 문무대왕이 유일하다. 해양을 늘 염두에 두고 왜국의 침략에 맞서 죽어서라도 바다를 통해 나라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강렬한 의지와 열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역사학자 E H 카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당연히 신라시대의 해양력과 해양문화는 근현대와 비교할 때 미미하고 제한적이지만 역동적이었던 역사적 교훈은 현재 기준으로 볼 때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주시가 20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문무대왕의 해양문화정책과 해양보국정신을 공유하기 위해 개최하는 ‘2018 문무대왕 해양 심포지엄’이 눈길을 끈다.

무릇 세계 각국이 경제발전과 자국 보호를 위해 해양을 무대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나라를 둘러싼 해양환경도 녹록지 않다.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문무대왕의 진취적인 해양정책을 되새겨보고 우리나라가 글로벌 해양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교훈을 얻는 동시에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가 바다를 매개로 신성장동력을 찾아 찬란했던 해양문화를 다시 한번 꽃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