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3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4년 9월 정부는 연말까지의 국세수입이 216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6개월이 지나 2014년도 세입 결산을 해보니 실제 들어온 세수는 205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정부 전망치보다 5.1%나 적게 들어온 것이다. 그즈음 정부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했던 경향 컸는데 이 때문에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세수 펑크’가 났다. 오죽했으면 당시 정부 내에서 “반복적인 세입결손을 방지하기 위해 세수전망을 가장 보수적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래서였을까. 최근에는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세수전망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하는 바람에 정부 전망치보다 더 많은 세수가 들어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242조6,000억원)과 지난해 세수(265조4,000억원)는 전망치보다 각각 4.3%, 5.7% 더 들어왔다. 올해 들어서도 5개월 만에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당시 예상한 세수 전망치(268조1,000억원) 중 절반 이상인 52.5%(140조7,000억원)가 들어왔다. 정부도 정확한 세수 추계는 사실상 어렵다고 토로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경기 변동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제성장률과 세수가 동조화하지 않는 경향이 커지고 있어 정확한 세수전망이 어렵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부정확한 세수를 내놓으면 그 영향은 우리 경제에 고스란히 부담이 된다는 점에서 그 정확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예상보다 세금이 적게 들어오는 ‘결손’만큼 세금이 많이 들어오는 ‘세수 풍년’ 역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6개월 앞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면서 현재 풍부한 세금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세수 풍년을 근거로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청년일자리 대책을 위한 추경을 편성했다. 17일에도 당정은 소득 하위 20%에 기초연금 30만원씩을 지급하고 근로장려금(EITC)의 지급 대상과 지원액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선심성 정책을 내놓았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실 세수가 많이 들어오는 것은 전(前) 정부가 비과세 혜택을 늘리는 등 기업 살리기 정책을 추진한 영향이 크다”며 “이를 근거로 최저임금을 올리고 나서 재정으로 메워주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공무원을 대폭 늘리는 것은 심각한 재정만능주의”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벌써부터 경기가 꺾이는 양상을 보이는데 정부가 국민 세금 아까운 줄 알고 비 오는 날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우리 경제는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조선 등 대부분의 주력업종이 정체하고 있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올 2·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지난해 말 50조2,776억원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줄어 가장 최근에는 45조1,340억원으로 예상됐다. 7개월 만에 영업이익 추정치가 10.2% 줄어든 것이다. 주요 업체들을 봐도 삼성전자의 2·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같은 기간 16조6,734억원에서 14조8,000억원으로 12.8% 줄었고 현대자동차는 1조5,613억원에서 무려 38.8% 줄어든 9,551억원으로 감소했다. 세수의 기반이 되는 기업들의 실적이 줄면 세수도 그만큼 줄 수밖에 없다. 반도체 호황에 취해 재정을 지나치게 풀면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나마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수출 여건도 나빠져 ‘세수 호황’에 언제든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 17개월간 증가세를 이어가던 수출은 올 4월 1년 전보다 1.5% 감소하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5월 반등에 성공했지만 6월에는 다시 소폭 감소하면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달 1~10일 수출액도 1.9% 감소해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장기 여건은 더 부정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수정보고서에서 미국발 ‘통상갈등’을 글로벌 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으로 꼽으며 이런 위협이 현실화하면 오는 2020년까지 전 세계 생산이 현재 전망치보다 0.5%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세계 교역량(상품·서비스) 증가율 전망치도 기존 5.1%에서 4.8%로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미국과 중국 등을 통한 수출로 경기를 끌어오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암울한 전망이 아닐 수 없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세수가 잘 걷히는 것은 세무 행정이 강화됐기 때문이지, 이것을 경기가 좋아졌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며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의 역할을 키우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지만 미래 경제의 키인 수출이 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세수가 부족해질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