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한 카페에서 매장 직원이 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후생노동성 중앙최저임금심의회는 올해 10월부터 1년간 적용할 2018년도 최저임금을 이르면 이달 하순 결정한다. 내년 최저임금을 10.9% 인상한 뒤 영세 소상공인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난 한국과 달리 일본 기업들은 3% 인상률을 예상하고 차분히 대응 방안을 준비 중이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이미 지난해 3월 “최저임금을 연 3%씩 올려 2023년 전국 평균 1,000엔(약 1만15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3% 인상률은 일본이 최저임금을 시급 체계로 바꾼 2002년 이래 최대 수준이지만 경영계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반면 한국은 똑같은 ‘최저임금 1만원’이 목표지만 일본과 달리 노사갈등이 극에 달한 형편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출범한 뒤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에서 2019년도 8,350원으로 2년간 총 29.1%(연평균 13.6%)나 올랐다. 연이은 두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한 소상공인연합회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 10.9%보다 더 낮은 인상률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오는 24일 총회를 열고 거리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현 정부가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정치적 목표 달성을 무리하게 추진하며 노사 갈등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베 정부의 ‘아베노믹스’와 문재인 정부의 ‘J노믹스’는 똑같이 가계소득을 늘려 경제를 부양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최저임금 고율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을 뒷받침하는 한 기둥이다. 하지만 시행 과정은 달랐다. 일본은 해마다 1~3% 내외로 안정적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박근혜 정부에서 연평균 7%대를 유지하던 인상률이 문재인 정부 들어 급등하며 사용자측의 격렬한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집권 뒤 지속적으로 사용자 단체에 최저임금 3% 인상을 당부해왔고 2016년부터 3% 인상을 본격 실천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지난 해 집권하자마자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을 밀어붙였고 내년 인상률도 10.9%로 확정됐다. 그나마 내년 최저임금은 인상률 차등화 무산에 반발한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측 대표가 아예 협상에서 빠져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과 노동계 대표들이 액수를 정했다.
재계에서는 정부가 성장보다 치적 달성에 무게를 싣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임기 내 실적에 정신 팔려 경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소득주도 성장을 꾀하는 장기적 정책 설계가 실종됐다는 얘기다. 박근혜 전 정부부터 지난 해까지 최저임금위에 참여했던 한 사용자위원은 “이번 정부는 물론 지난 정부를 돌아봐도 사실상 정부측 공익위원들이 인상률에 결정적 영향을 행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사용자와 근로자가 결정해야 할 최저임금이 정치적 수단으로 변질된 듯하다”고 말했다.
재계와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기업들의 임금 지불능력이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도 일본과 다른 한국의 문제점으로 꼽는다. 일본은 최저임금법 제 3조 ‘최저임금 결정의 3원칙’ 중 하나로 사업주의 임금 지불능력을 규정하고 있다. 논의 과정에서 기업들의 부가가치액 등이 실제로 고려된다. 반면 한국은 최저임금법에서 임금 실태 등을 조사하도록 규정할 뿐 기업들의 지불 능력 고려를 의무화한 규정이 없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낮게 유지한 것은 2000년대 이후 경제성장률이 거의 0%에 머물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2000년대 초중반 4~5% 최근 2~3% 수준으로 내려올 정도로 성장세가 달라 최저임금 인상률을 크게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이 비슷하지만 한국은 임금 격차가 워낙 커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임금을 급격히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영세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때문에 당장 폐업을 걱정해야 한다는 점은 현 정부에 딜레마를 안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