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청와대 페이스북 동영상 ‘친절한 청와대-최저임금 대책 편’에 출연한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렇게 말했다. “가계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이번 조치(일자리안정기금 등 최저임금 대책)는 정부가 재정자금을 투입해 가계소득을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내수를 증진해 결과적으로 소득분배와 성장으로 이어지는 소득주도성장의 첫 출발점이다. 꾸준히 지켜봐달라.”
그로부터 1년, 홍 전 수석은 2선으로 물러나고 소득주도성장은 여전히 ‘꿈속’을 헤매고 있다. 홍 전 수석은 학자 시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근로자의 실질임금이 증가하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고 노동생산성 또한 상승해 장기적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고 설파해왔다. 그리고 경제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지난 1년간 ‘가계가 잘사는’ 정책으로 이를 적용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은 얽힐 대로 얽혀버렸다.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기는커녕 소득양극화가 심화하고 일자리는 줄고 있다. 급기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반발까지 불러왔다. 지난 15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조차 ‘솔로몬의 해법은 없다’고 자인할 정도로 혼란과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경제이론을 청와대가 이상에만 치우쳐 과도하게 밀어붙였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꿈만 좇다 보니 시장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해 화를 자초했다는 얘기다.
소득주도성장의 난맥상은 이미 예견됐는지도 모른다. 경제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상태에서도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데 한국 경제의 구조가 취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실험’을 했으니 말이다. 실험이라도 대내외 경제환경이 순탄했다면 부작용도 흡수되면서 본궤도에 올랐을지 모른다. ‘6개월 후면 안정화될 것’이라던 청와대·정부의 기대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올해 우리 경제는 3% 성장도 버겁다. 조선·철강·자동차 등 주요 주력산업은 중국의 추격과 통상 파고 속에 신음하고 있다.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경기가 나아지지 않아 아우성이다. 이렇게 경제가 소득주도성장을 수용할 준비와 감당 능력이 안 돼 있는데 속도전을 벌이듯이 몰아세우니 탈이 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최저임금 쇼크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윤종원 신임 경제수석 임명을 계기로 당·정·청에서 ‘포용적 성장’이라는 말이 부쩍 많이 들린다. 윤 수석 임명 당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포용적 성장을 언급하더니 바로 다음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포용적 성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하루 뒤에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포용적 성장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합친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거들었다. 말 많고 탈 많은 소득주도성장에서 포용적 성장으로 옮겨 타는 분위기다.
포용적 성장은 시장경제에 따른 부작용, 즉 불평등이나 양극화는 정부의 소득재분배와 복지·사회안전망 확충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윤 수석도 포용적 성장론자로 알려져 있으니 당·정·청이 호흡을 맞춰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다만 소득주도성장이든, 포용적 성장이든 경제 여건이나 이해관계자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는 게 먼저다. 나를 따르라는 일방통행식으로는 필패다. 내 편에게서 듣고 싶은 목소리만 들으면 시장의 역습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요즘 세상은 인공지능(AI) 등장 등 기존의 경제학 잣대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고 고민해야 할 변수도 많다. 통계수치나 어설픈 이상론으로는 급변하는 경제현상을 따라잡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돌아보면 진보 인사들의 이상은 높았지만 정책은 참 무능했다”고 술회했다.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부한 것처럼 현장에 나가 답을 찾아야 할 때다. 가계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청와대나 여당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밖에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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