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누적된 부작용을 더는 무시하기 어렵다.”
일본은행(BOJ)이 오는 30일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의 핵심축인 양적완화 정책의 부작용을 논의한다. 경기부양책 장기화로 발생한 시장조작 논란, 금융권 위기 등의 부작용을 더는 외면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 이어 일본도 긴축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신호가 나오면서 지난 20일(현지시간) 독일과 영국의 10년물 국채금리가 뛰는 등 글로벌 시장이 출렁였다. 다만 여전히 물가 수준이 바닥인 상황에서 섣불리 양적완화에 손댈 경우 엔화강세를 야기하면서 디플레이션 탈출 목표에 역풍을 맞을 수 있어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발 무역전쟁 확산에 따른 영향권에서 일본도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라 긴축을 암시하면 엔고 속도가 빨라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BOJ는 30일 회의에서 양적완화 정책의 부작용 경감대책을 논의한다. 현재 0% 근방에 머물고 있는 10년물 국채금리를 일정 수준 끌어올리는 수준의 통화정책 ‘유연화’가 거론되는 가운데 국채와 상장지수펀드(ETF) 등 자산매입 방법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BOJ 관계자는 로이터에 “낮은 물가상승률의 배후에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면 정책을 보다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점차 늘어나는 경기완화책의 비용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구로다 총재는 2013년 취임 당시 2년 안에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해 ‘잃어버린 20년’의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겠다며 막대한 양의 ‘돈 풀기’ 정책에 착수했다. 하지만 유례없는 통화완화에도 물가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오히려 BOJ의 대규모 자산매입이 시장 유동성을 고갈시키고 가격을 왜곡한다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만 커졌다. 특히 BOJ가 2016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자 금융사들의 영업환경이 날로 악화하면서 완화정책에 대한 반발이 쏟아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일본 시중은행의 절반 이상이 핵심 대출 및 수수료 사업에서 손실을 봤다.
이에 따라 구로다 총재가 임기연장에 성공한 올 초부터 양적완화 정책 수정 및 긴축정책 전환이 구로다 2기 체제의 과제로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문제는 여전히 물가가 바닥 수준에 머물러 있어 섣불리 양적완화 정책에 손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경기를 냉각시킬 우려가 있는 것은 물론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아베 신조 정권의 목표 달성이 더욱 요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발표된 일본의 6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0.8% 성장에 그쳤다. 특히 가격 변동이 심한 신선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성장률은 전년동월 대비 0.2%로 3개월 연속 둔화됐다. 이는 8개월 만에 최저치다.
BOJ는 이번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물가상승률 전망을 4월에 설정한 목표보다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기존의 1.3%에서 1% 정도로 낮추고 내년 전망치도 1.8%에서 1% 중반대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는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이 선택한 출구전략은 2% 물가목표 달성에 통하지 않는다”며 “결국 남은 선택지는 현재의 완화책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금융기관의 부작용을 낮추는 방안인데, 쉽지 않은 과제”라고 전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