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시장의 기대치를 저버리고 정책금리를 동결한 데 대해 시장이 단순한 실망감을 넘어 외환위기 발발에 대한 공포감에 빠져들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역사상 첫 대통령중심제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제기됐던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우려가 현실화하자 터키 증시와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투자자들은 터키 시장에서 빠르게 등을 돌리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이 같은 행보가 리라화 가치 추락은 물론 국채 금리 상승, 외화부채 상환 부담 가중 등의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경고를 쏟아내며 터키발 금융위기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24일(현지시간) 터키 중앙은행이 시장의 기대와 달리 기준금리인 일주일 환매조건부채권(레포) 금리를 17.75%로 동결하자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당초 시장에서는 터키 중앙은행이 치솟는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최소 100bp(1bp=0.01%)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달 터키 물가상승률은 15년 만의 최고치인 15.4%까지 올랐다. 여기에 리라화 가치도 크게 하락하는 추세라 경제위기 돌파를 위해서는 금리 인상이 필수라는 것이 시장 전반의 컨센서스였다. 특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미 달러화 강세와 글로벌 무역전쟁에 취약한 신흥국 경제에 대한 우려까지 맞물려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컸다. 대규모 외화부채를 떠안은 터키가 리라화 약세로 부채상환 부담이 커지는 것을 피하려면 통화가치 방어가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예상을 깬 금리동결은 중앙은행이 시장을 등지고 정치권력에 귀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했다는 시장의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올해 들어 20%가량 떨어졌던 리라화 가치는 이날 장중 한때 4.2% 넘게 하락했고 10년물 터키 국채금리는 18.67%까지 급등하는 등 충격이 터키 금융시장을 휩쓸었다. 터키 증시도 -3.33% 급락했다.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선 이후 사위인 베라트 알바이라크를 재무장관 자리에 앉히는 등 자신의 측근으로 내각을 채우는 모습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지켜본 투자자들은 이번 결정에 경악했다. 가계부담 증가에 따른 민심 이탈을 방지하고 투자와 소비를 진작해야 한다며 금리 인상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에르도안 대통령의 반시장 행보가 이번 조치로 명백히 확인됐기 때문이다. 터키 경제의 건전성과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위기에 빠뜨린 이번 금리 동결로 터키 정부의 경제 방향성이 확인된 만큼 글로벌 투자자들의 터키 이탈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난 데미르 노무라인터내셔널 연구원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터키 중앙은행의 금리 동결 결정은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터키 경제의 정책 방향에 대해 시장이 가진 ‘최악의 우려’를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스위스 자산운용사 GAM의 폴 맥나마라 신흥시장투자총괄은 “리라화 약세가 강세보다 더 위험하다”며 “국채 수익률 상승과 리라화 약세에 따른 피해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피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고 경고했고 터키 산업기업가협회의 즈무루토 이마모르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연말까지 리라화 가치가 달러 대비 5~5.2리라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